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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주의자’ 그녀 3인분 먹더니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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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호 28면

아담한 키에 마른 체형을 가진 후배는 겉으로 봐선 전혀 튀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조용 일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녀는 무시무시한 먹성의 소유자다. 특히 스스로를 ‘고기성애자’라고 할 만큼 고기를 밝힌다. 곰탕집에 가도 고기만 쏙 골라 먹고 밥은 그대로 남기는 그녀는 얄밉게 살도 안 찐다. 탄수화물은 거의 먹지 않고, 고기만 주구장창 먹어서인가. 삼겹살 6인분을 먹어 치우고도 화장실에 한 번 다녀오면 다시 배고프다니 타고난 먹성이다.


물론 그녀는 아무 고기나 먹지 않는다. 물에 빠진 고기, 예를 들어 샤브샤브에 넣는 고기는 그녀에게 최악의 메뉴다. ‘웰던(Well-done)’으로 익어버리기 때문에 육즙이 다 빠져서 고기의 영혼을 맛볼 수 없다나. 스테이크는 무조건 레어. 돼지고기는 기름기 많은 삼겹살이 제일인데 살코기 반, 비계 반이 섞여야 최고란다. 누군가에게서 “고기 먹으러 가자”는 말이 나오면 그녀는 늘 “오늘 계 탔다!”며 좋아한다. 이십대의 그녀가 우리 어머니 세대에 유행했던 ‘계모임’이 어떤 건지 알고나 하는 말인지.


아무튼 광진구 자양동에서 ‘계탄집’이라는 이름의 숯불닭갈비 집을 본 순간 그녀의 얼굴부터 떠올랐다. “고기 쏠게, 나올래?” 했더니 역시나 그녀는 환호성을 지르며 한걸음에 달려왔다.


계탄집은 오픈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지만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미식가와 애주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 됐다. 남편 김성우(34)씨가 요리를, 아내 박선진(31)씨가 홀 서빙을 책임진다. 부부로의 인연은 막걸리가 이어주었다. 대학교 같은 과 선후배로 학술 동아리에서 만나 사귀게 되었는데 막걸리 집에서 밤새 이야기하며 술잔을 기울이다 결혼을 약속하게 되었다고 한다. 2011년 결혼해 각자 직장생활을 했지만 회사 생활이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 이후 박씨는 막걸리 빚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남편 김씨는 막걸리 주점에서 근무하며 다양한 요리를 배웠다. 그리고 지난해 8월 계탄집을 오픈했다. ‘계 탔다’는 말에는 기분 좋은 날, 운 좋은 날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데다 한자로 닭 계(鷄), 숯 탄(炭)자를 붙일 수 있으니 ‘숯불닭갈비’를 파는 이들에겐 그야말로 안성맞춤의 상호명이다.


부부가 가장 공들여 준비한 것도 닭과 숯이다. 전국의 유명하다는 닭갈비집을 50여 군데 찾아다니며 맛을 연구하고, 유통 업체를 선별했다. 닭은 매일 아침 공수 받는다. 통통한 닭다리 살을 얇게 저며서 이동갈비처럼 뼈에 둘둘 말아내는 게 특징이다. 마늘 즙·천일염·정종 등이 들어간 비법 양념으로 밑간을 해서 24시간 숙성시킨 살코기는 야들야들 부드럽다. 숯불구이의 핵심은 말 그대로 숯. 우리나라는 참나무를 베는 것이 불법이라 국내산 참 숯을 쓸 수가 없다. 해서 좋은 숯을 수입하는 곳을 뒤져 찾아낸 멕시코산 숯을 공수해 쓰고 있다.

닭갈비는 마늘소금·간장양념·매운 양념의 세 가지 맛이 준비돼 있다. 숯불에 닭갈비가 익어가는 동안 군침 흘리며 심심해 하는 손님들을 위해 이 집에서는 기본 안주로 닭발 튀김을 제공한다. 노란 튀김옷을 입은 닭발은 꽤 고소해서 별미로 인기가 높다.


어느덧 고기가 지글지글 익기 시작하자 성질 급한 후배는 잘 익은 닭갈비 한 점을 찾아내 집더니 입에 쏙 넣는다. “얼린 닭을 쓰는 곳이 많은데, 그런 닭은 빛깔부터 달라요. 그런데 여기는 고기가 아주 싱싱하네요. 살이 부드럽고 양념이 입에 착 붙어요. 좋은 고기는 보물이에요. 배속에 싹 담아가고 싶은 욕심을 부른다니까요.” 그녀는 어느새 3인분을 해치우고 또 3인분을 주문했다.


숯불닭갈비를 먹는데 술이 빠질 수 있을까. 계탄집에선 이강주·문배술·안동소주 전통 소주 3종을 맛볼 수 있다. 도수는 19~23도. 가격도 8000원이라 부담이 없다. 마늘소금 양념은 문배술, 간장양념은 안동소주, 매운 양념은 이강주와 잘 어울린다. 막걸리도 맛볼 수 있다. 우리가 갔을 때는 개도막걸리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매달 다른 막걸리로 바뀐다. 운 좋은 날은 박선진씨가 직접 빚은 ‘박구주 막걸리’를 맛볼 수 있으니 계탄집에 가면 만들어진 술이 있는지 꼭 물어보시길.


순식간에 고기 6인분을 해치우고 끝내 계란찜과 초계국수까지 시켜먹은 후배는 그제야 포만감 가득한 미소를 짓는다. “물에 빠진 고기는 별로지만 이 집 초계국수는 정말 별미네요.”


도대체 누가 그녀를 데리고 갈지 모르겠지만, 부디 고기를 미치게 좋아하는 짝꿍을 만나길. 물론 저 먹성을 만족시키려면 지갑 사정도 넉넉한 남자여야겠지. ●


이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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