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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곡성(哭聲)’의 기이함을 빚어낸 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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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곡성(哭聲)’(5월 11일 개봉, 나홍진 감독, 이하 ‘곡성’)은 음산한 기운과 공포가 온몸으로 전해지는 영화다. 그간 한국영화에서 느낄 수 없었던 기이한 에너지 가득한 화면에선 촬영·미술·음악 등 주요 스태프들의 노고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홍경표(54) 촬영감독, 이후경(39) 미술감독, 장영규(48)·달파란(50) 음악감독에게 제작 뒷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은 “혹독하고 고된 작업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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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이 느껴지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 홍경표 촬영감독
 ‘곡성’은 나홍진 감독과 홍경표 촬영감독이 함께 작업한 첫 작품이란 점에서도 화제가 됐다. ‘독한 사람이 더 독한 사람과 만났다’는 우스갯소리가 돌기도 했다. ‘마더’(2009, 봉준호 감독) ‘설국열차’(2013, 봉준호 감독) ‘해무’(2014, 심성보 감독) 등에서 감각적인 화면을 만들어 낸 홍 촬영감독을 나 감독에게 추천한 이는 배우 김윤석이다. “둘이 만나면 어마어마한 시너지가 일어날 것”이란 이유에서였다.

홍 촬영감독은 ‘해무’에 이어 또 어두운 영화를 찍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너무나 매력적인 시나리오를 외면하진 못했다. 영화에 합류하기로 한 홍 촬영감독은 나 감독과 함께 전남 곡성에 내려갔다. 그곳에서 스산하고 괴기한 분위기를 느낀 홍 촬영감독은 나 감독에게 “기운이 느껴지는 영화를 찍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4개월간의 로케이션 헌팅 끝에 종구(곽도원)의 집(경남 함양), 외지인(쿠니무라 준)의 은신처(곡성의 산속 폐가)에 걸맞은 최적의 장소를 찾아냈다.

외지인이 고라니를 파먹는 장면(전남 해남 두륜산), 종구 일행과 외지인의 추격 시퀀스(전북 고창 선운산) 등에 어울리는 공간을 찾느라, 홍 촬영감독은 “산사람이 다 됐다”고 했다. 그는 콘티도 없이, 현장에서 나 감독과 상의해 가며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촬영했다.

일광(황정민)이 첫 등장할 때의 산속 도로 부감 숏은 전북 진안의 모래재 국도에서 드론(Drone·소형 무인 항공기)을 이용해 촬영했다. 홍 촬영감독은 “사악한 일광의 캐릭터를 반영해 뱀의 움직임 같이 구불구불한 도로를 택했다”고 말했다. 일광의 야간 굿 장면은 황정민이 한 호흡으로 연기할 수 있도록 한 번도 끊지 않고 촬영했다.

그리고 여섯 대의 카메라로 황정민의 연기를 다양한 각도에서 담아냈다. 굿을 돕는 사람들과 악사들 모두 실제 무속인이다. “황정민은 무속인들조차 놀랄 정도의 신들린 연기를 보여 줬다”고 홍 촬영감독은 말했다. 홍 촬영감독은 가장 힘들었던 촬영으로 좀비 액션신과 비 오는 국도 장면을 꼽았다. 그는 “좀비 액션의 경우 무서우면서도 웃긴, 이상한 느낌을 만들어 내야 했기에 부담이 컸다”며 “배우들도 일주일간 고생하며 찍었다”고 했다.

좀비를 연기한 배우 길창규는 현대무용가에게 안무 지도를 받았다. 산길 국도에서 종구 일행이 트럭을 타고 가는 장면은 오랜 기간에 걸쳐 비 오는 날을 기다려 찍었다. 스태프들은 비가 조금이라도 내리면 무조건 카메라를 들고 나갔고, 배우들은 쉴 곳도 없는 데서 비에 젖은 몸을 떨어 가며 연기했다. 종구가 국도 옆으로 외지인 시체를 던져 버리는 장면을 찍을 때는 가랑비가 내리는 상태에서 안개까지 깔려 최적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일광이 차를 몰고 종구의 집 앞에 나타나는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도, 유난히 파랗던 새벽 하늘 덕분에 화면 가득 허무한 정서가 채워질 수 있었다. 홍 촬영감독은 “자연이 도와준 듯 운 좋게 포착한 장면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스태프들이 잠든 새벽, 산에 올라 해 뜨기 직전의 풍경을 찍어 오기도 했다. 가장 드라마틱한 빛을 포착할 수 있는 ‘매직 아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며 보석 같은 곡성의 원경을 건져 냈다. 홍 촬영감독은 “하나의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선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법”이라며 “시나리오만 좋다면 나 감독과 또 작업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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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의 방, 소름 끼치도록 섬뜩하게 이후경 미술감독
‘곡성’의 미술 컨셉트는 사실감을 극대화한 배경에 기괴한 장르적 표현을 결합하는 것이었다. 이후경 미술감독은 “곡성 주민이 사는 일상을 자연스럽게 담되 피부가 좀비처럼 변한 환자, 날짐승을 먹는 외지인 등 장르적 요소를 덧댔다”며 “그 대비가 관객에게 더 큰 충격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극에서 한옥이 자주 등장한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날이 밝을 땐 토속적인 시골집이지만, 빛이 들지 않으면 기이한 느낌을 준다”는 설명이다.

이 미술감독이 가장 공들여 만든 공간은 외지인의 방. 흔한 산속 폐가 같지만 내부는 소름 끼치는 살의로 가득 찬 곳이다. “미지의 존재인 외지인의 숨겨진 면을 충격적으로 전달하는 게 중요했다. 촬영 전 네팔에서 종교 의식을 취재해 온 나홍진 감독과 상의하며 만들었다.” 외지인의 제단이 마련된 방에 모닥불을 피우는 건 일본 밀교에서, 염소 머리를 두고 제사지내는 건 힌두교 제의(祭儀)에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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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모티브로 한 장치 역시 섬뜩함을 끌어올린다. 첫 번째 살인 현장에는 잡동사니들이 새 둥지 모양으로 어질러져 있다. 이 미술감독은 “공포에 떨던 피해자가 자신을 지키려 본능적으로 둥지처럼 물건을 늘어놓은 것”이라 설명했다. 몇 차례 등장한 동물 사체는, 합법적으로 구한 실제 사체나 마취한 동물이다.

외지인이 동물을 뜯어먹는 장면에 쓴 고라니(쿠니무라 준이 실제로 먹은 것은 육회였다)와 그의 방에 있는 닭·물고기 사체는 진짜였기 때문에 촬영장엔 악취가 진동했다. 종구의 집 대문 앞에 걸린 흑염소 사체는 마취한 염소에 돼지 내장을 달아서 만들었다.

일광의 굿 장면에 쓰인 도구는 실제 무속인의 것이다. “살을 날리는 타살굿은 실존하지만, 이를 행하는 무속인이 거의 없어 다른 종교 의식을 참고했다. 동물을 살생하는 대목은 원시 신앙에서 따왔고, 장승을 쓰러뜨리는 대목에서는 실제 타살굿에 쓰이는 것보다 더 큰 장승을 만들어 과장되게 표현했다.”

‘삐-’ 소리 하나에도 불안감이 느껴지도록 장영규·달파란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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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규(오른쪽)·달파란 음악감독

 ‘곡성’의 음악은 공든 탑을 무너뜨렸다 다시 쌓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영화 전개가 복잡해, 사건 흐름과 인물의 감정 변화 중 무엇에 따라 음악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했다.

장면마다 따로 보면 어울리지만 전체를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모든 음악을 재배치했다.” 장영규 음악감독의 말이다. 보통 영화의 음악 작업이 3개월가량 걸리는 데 비해 ‘곡성’은 1년이나 걸린 이유다.

결국 처음 생각했던 공포감을 증폭하는 장르 음악이 아닌 종구의 감정에 집중한, 보다 담담한 현악기 음악으로 선회했다. 두 음악감독이 주로 활용한 악기는 현악기와 타악기. 종구의 절박함이 드러나는 장면에선 현악 4중주를 활용했다. “본래 나 감독은 오케스트라를 활용해 웅장한 느낌을 담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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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용되는 악기 수가 적을 수록 관객이 극에 더 집중하고 몰입할 거라 생각했다”는 게 장 음악감독의 말이다. 또 굿 장면 등 토속적이되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목에선 북, 팀파니 등 다양한 타악기로 무속 장단을 변주했다. 가장 중요한 건 소리의 질감이었다. “단순한 ‘삐-’ 소리도 미세하게 다른 소리를 여러 겹으로 쌓아 만들었다. 들릴 듯 말 듯한 저음은 기분 나쁘고 불안하게 한다.

몸으로 느끼는 소리다.” 장 음악감독의 말이다. 일광이 타살굿하는 장면에선 굿 음악에 이런 소리를 섞었다고. 두 음악감독이 가장 많이 논의한 대목은 종구 일행이 산속에서 외지인을 추격하는 장면. “외지인이 쫓길 땐 장엄하고 박진감 있는 음악이 이어지다, 절벽에 매달릴 땐 안타까운 감정이 느껴지게 만들었다. 음악의 색깔을 가장 고민한 대목이다.”

정현목·김나현 기자 gojhm@joongang.co.kr, respiro@joongang.co.kr
사진=이십세기폭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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