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양심만으론 질서 유지 어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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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얼마 전 한 일간지에 정차위반으로 딱지를 떼인 버스 운전기사의 선처를 호소하는 기사가 실렸다.

사정은 이랬다. 운전기사가 승객을 태우고 출발하는 순간, 지팡이에 의지한 할머니가 다가왔다. 못본 체할 수 없어 할머니를 태웠다.

때마침 단속 나온 구청직원은 정류장에 차를 바짝 대지 않은 채 승객을 태웠다며 딱지를 끊었다. 이 모습을 버스에 탔던 기자가 목격하고 글을 쓴 것이다.

보도가 나간 뒤 해당 구청 홈페이지에는 '법도 중요하지만 구청장님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딱지를 뗄 게 아니라 친절상을 주시길'등 운전기사 를 선처해 달라는 주문이 꼬리를 물었다. 사정이 이러하자 해당 구청은 "정상을 참작해 이번에 한해 계도(啓導)조치한다"고 운전기사에게 통보했다.

그런데 홈페이지엔 '법은 지켜져야 합니다. 할머니께도 기사님께도 평등하게 지켜져야 합니다. 딱지는 꼭 떼야 합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모금을 합시다. 그래서 법 위에 군림하는 자들에게 부끄러움을 알게 합시다'라는 글도 함께 보였다.

운전기사의 '아름다운 위법'에 대한 가치판단은 다음 순위다.

문제는 운전기사가 정차위반까지 하며 노인을 태워야 하는 풍토를 누가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정차위반을 하면 벌금만 무는 게 아니라 교통 흐름을 방해하고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데도 말이다.

대도시에서 거동이 불편한 노인은 버스 운전기사에게 흔히 왕따를 당한다. 배차 시간에 쫓기는 데다 태우더라도 균형을 잡지 못해 '안전 운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

우리 사회는 법대로 살면 오히려 손해본다는 풍조가 만연해 준법 정신이 낮은 편이다.

경제성장 과정에서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관행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고, 툭하면 지역이기주의나 집단이기주의 때문에 법은 뒷전으로 밀린다.

현대 사회는 복잡하고 개인의 이익을 중요시하므로 양심에 호소하는 식의 질서 유지 방법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공동생활의 질서를 잡고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최소한의 도덕인 법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법은 사람들이 믿고 생활할 수 있어야 하며,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돼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법 집행이 엄정하지 않으면 약자의 권리는 보호받을 수 없다.

누구나 나부터 먼저 법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법을 어기면 내게도 피해가 돌아올 수 있다는 인식이 중요하다.

이제 헌법 공포 55돌을 맞는다. 법과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태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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