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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고준위방폐장, 절차법 제정도 서둘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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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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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두승
서울대 명예교수
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장

우리나라는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하는 에너지 빈국이면서도 에너지 소비가 많은 국가다. 국내 소비 전기의 30%를 공급하는 원자력발전에서 생기는 폐기물 관리문제는 우리가 반드시 풀어나가야 할 과제다. 모두가 전력산업의 혜택을 누린 만큼 그 부산물인 고준위방폐물의 관리 또한 우리 모두의 책무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안전한 관리, 권리와 책임, 혜택과 부담의 균형을 위해 조속히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정부는 25일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행정예고했다. 우리나라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정책지도가 마침내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역사 38년, 중·저준위방폐장 부지 선정 11년 만의 일이다. 사회적 합의경험이 아직 일천(日淺)하고, 과거 아홉 차례의 실패 경험과 많은 진통을 수반했던 사안인 만큼, 앞으로의 시간계획이 명시적으로 제시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의의가 있다.

무엇보다 지난해 6월 하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20개월간 국민의견을 수렴해서 정부에 권고한 사항을 대폭 수용한 점이 매우 다행스럽다.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필자로서는 더욱 소회가 남다르다. 남모를 고민과 갈등도 많았지만,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에 온·오프라인으로 37만여 명의 국민이 동참하면서 공론화의 가능성과 희망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큰 성과였다.

정부의 기본계획은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한 절차와 방식을 규정한 로드맵으로 지하연구시설, 중간저장시설, 영구처분시설을 같은 곳에 두도록 하고 있다. 지질조사와 주민의견 수렴 등 부지선정에 12년, 중간저장 시설 건설에 7년, 영구처분시설 건설에 25년 등 시간적인 일정과 단계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국제적인 공동저장·처분시설 확보노력도 계속하고, 한·미원자력협정이 허용한 재활용 기술개발도 추진하도록 하였다. 향후 국제협력의 진전과 기술진보에 따른 다양한 선택권을 갖고 여건변화에 대응한다는 점은 특히 눈길을 끈다.

사용후핵연료 등 고준위방폐물 관리문제는 1983년 정책 추진 이후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듭했지만, 그 자체가 포괄적 공론화과정이었다. 지금의 기본계획도 역대 정부의 좌절과 노력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돼야 한다. 사실 어떤 정책이든 처음부터 완벽하게 설계되기는 쉽지 않다. 과거 많은 논란을 통해 이와 같은 계획이 가질 수 있는 여러 문제점을 사전에 짚어 볼 수도 있었다. 고준위방폐물 관리문제는 여기까지 오는데 한 세대가 넘게 걸렸다. 불편하다고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다.

앞으로 국무총리가 주재하는 원자력진흥위원회에서 기본계획이 확정되면, 실행을 뒷받침할 관리절차법도 20대 국회에서 제정돼야 한다. 고준위방폐물 관리문제를 위해 18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공론화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던 것처럼, 이번 국회에서도 여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준위방폐물 관리 절차에 관한 법안을 조속히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한다. 이제 더 이상 좌고우면 할 시간이 없다.

홍두승 서울대 명예교수·전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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