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다리모아 앉는 게 전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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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비교적 한산한 오후 지하철전동차안. 옆자리의 대화소리가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저절로 들려온다. 귀여운 어린이의 말이다. 일본어이다.
『엄마! 엄마나라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고 했지?』
얘기가 하도 맹랑해서 흘깃 훑어보니 유치원생쯤 되는 여아와 젊은 엄마이다.
『그런데 왜 저 아줌마들은 저렇게 버릇없이 앉아있지? 저렇게 앉으면 나쁜 여자라고 했잖아?』
순간 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바로 내가 늘 느끼고 있는 점이다. 아닌게 아니라 맞은편 좌석에는 공교롭게도 여성품평회같이 6, 7명의 여인들만이 한 줄로 쭉 앉아 있었다. 나이·생김새·옷차림, 각양각색이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하나같이 다리를 벌리고 앉은 자세다. 청바지도, 스커트 차림도, 홈드레스, 심지어는 한복차림도. 거기다가 껌을 짝짝 씹고 있는 여인까지 골고루도 모여있었다.
젊은 엄마는 흠칫한 듯 잠시 말이 없더니, 아주 조심스럽게 작은 소리로
『그건 나라마다 풍속이 다르니까 그런거야.』
『그래요? 풍속이 뭔데?』
나는 여기까지 듣다가 그만 민망해서 자리를 뜨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뒤 이 야무진 딸에게 어떻게 「풍속」이란 추상명사를 설명해줬는지, 그건 알바아니다.
풍속이라! 나는 달리는 차창 밖 암흑속을 내다보면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여자가 다리를 벌리고 앉는 것이 과연 우리 고유의 풍속일까? 하긴 흔히 눈에 띄는 광경들이긴 하다. 시장 길가에서, 공원 벤치에서, 역구내에서, 심지어 대학강의실에서-.
그러나 예의지국(본난에선 이 말을 자주 쓰게된다)의 풍속이 그럴 리 없다. 다만 생활양식과 폭넓고 긴 치마속에 가려 다리를 오므리는 우리의 자세가 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의자생활이 아닌 점은 일본도 마찬가지가 아니냐」 는 반문이 나올 수도 있겠으나 그들은 옷이 다르다.
원래 일본여성들은 속바지란 것이 없고, 어린애 두렁이 같은 짧은 천으로 허리아래를 감싸고 웃옷을 입는 것이 고유의 복장이었다. 그러므로 「팔」자 반대되는 걸음걸이가 거기서 비롯됐고, 무릎 꿇는 앉음새는 죽어도 지켜야되는 처신법이 되었다. 심지어 자살할 때, 지금도 스스로 두 다리를 끈으로 미리 묶고 죽는 여인이 적지 않다. 서양여성은 어떤가. 짧은 스커트가 거기서 왔으니 물을 필요도 없다.
우리도 전통적 예속은 다리를 벌리지 않는 것이었다. 염슬단좌라는 말이 이를 증명한다. 「염」은 오므린다, 흑은 가지런히 하다의 뜻. 그래서 남자는 어른앞에 무릎을 꿇고, 여자는 치마속에 가리어 안 보인다 하더라도 두 다리서 옆으로 모아 꺾든가, 혹은 한 무릎을 세워 그 위에 두 손을 마주 잡아 (염수)올려놓는 자세가 품위있는 앉음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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