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권학생의 『전술지침서』-2호까지 낸 유인물 『깃발』이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삼민투배후세력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운동권학생들의 행동지침인 급진좌경유인물 「깃발」을 제작했거나 배포한 학생·일반인11명을 구속, 또 한차례 관심의 충격파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깃발」 구속자에게는 삼민투관련자와는 달리 모두 국가보안법이 적용돼 이 사건 수사에 대한 당국의 강도를 가늠할수 있다. 16절지로 된 팸플릿 형식의 「깃발」은 1, 2호 모두 「서울대 민주학우」명의로 발간됐으며 1호(84년 8월제작)가 12페이지, 2호(84년 11월제작)가 18페이지로 돼있다.
내용은 모두 정부의 학원자율화 이후 학생운동의 방향을 이론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내용에 용공성향이 짙고 이 지침서가 나온후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기 시작하는등 「과격투쟁」을 주도했다고 당국은 판단하고 있다.

<수사>
시기적으로는 삼민투관련자 수사발표가 「깃발」보다 앞섰으나 수사가 시작된 싯점으로 따지면 「깃발」이 훨씬 앞서 있다.
「깃발」 1호가 지난해 8월 제작됐고 2호가 11월에 제작됐으며 당국의 수사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삼민투보다 연원이 훨씬 깊은 것이다.
서울지검 김원치검사를 팀장으로 한 수사반에는 「서울대통」으로 알려진 관악경찰서의 K형사와 남부경찰서의 S형사가 특파돼 1년 가까운 추적끝에 지난19일 1차로 윤성주군 (24·동양사학과3년 휴학)등 2명을 구속했다.
윤군은 저명정치인의 아들로 알려졌다.

<깃발1호>
사회주의혁명노선및 투쟁방법과 매우 유사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당국은 분석하고 있다.
우선 학원자율화이후의 국면을 「유화국면」으로 규정하고 「유화국면의 본질」은 ▲통치기반의 강화와 ▲운동권의 통일성 확보및 대중적기반의 획득이라는 두개의 상반된 관계에 있으며, 국면의 발전을 위한 과제는 대적(대적) 연대투쟁의 실행에 있다고 주장하고있다.
1호는 이 같은 전제아래 지난해 1학기동안 학내에 머물렀던 학생운동은 학교밖으로 진출해야하며 그 계기가 되는 싯점을 대통령의 일본방문(84년9월)으로 겨냥했다.
실제로 1호가 나온뒤 학생들의 가두시위가 본격·과격해졌고 대학간의 연합시위나 근로자와의 합동시위등이 꼬리를 물었다. 이와함께 대외투쟁을 위한「학내기지」를 구축하기 위한 학생회 부활투쟁도 병행됐다.

<깃발2호>
2호는 1호 이후의 학생운동을 철저히 반성, 비판하고 앞으로의 투쟁노선을 제시한 것.
예컨대 총학생회 부활문제에 대해 「그 동안 예산확보문제등 학내문제에만 중점을 둬 방향과 역할이 불투명해졌다」며 사회투쟁에, 진력할 것을 제시했다. 이같은 주장은 「적」과 「아군」을 철저히 구분, 「비타협적이어야」 투쟁이 선명해질수 있다는 운동권 지도부의 논리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같은 관점에서 2호는 투쟁의 종류를 ▲계급적모순의 타도를 목표로 하는 「민중지원투쟁」과 ▲대 정부 이데올로기 투쟁인 정투(정투)로 분류했고, 구체적인 투쟁방식도 ▲명동·광화문등 중산층 밀집지역에서의 소요인 「소비지투쟁」과 ▲목동등 빈민층수재지역에서의 「생산지투쟁」등을 제시했다.
2호는 시위에서 투석과 방화를 담당한 현장의 기동타격대를 「전투소조」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2호의 제반투쟁지침은 민정훈사농성·총선거부등으로 표현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