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80대 살인사건 병사로 처리했다가 뒤늦게 검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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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결정적 단서를 확보하고도 살인 사건을 단순 사망 사건으로 처리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24일 충북경찰청 등에 따르면 괴산경찰서는 증평군 증평읍의 한 마을에서 A씨(80·여)를 살해한 혐의(살인 등)로 지난 23일 오후 6시쯤 신모(58)씨를 긴급체포 했다. 신씨는 지난 16일 오후 증평읍의 한 주택에서 혼자 살고 있는 A씨를 목을 졸라 숨지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지난 21일 오후 3시쯤 아들에 의해 발견됐다. 사망한 지 닷새 된 A씨 시신은 발견 당시 부패한 상태였다. 경찰은 사건 당일 A씨가 숨진 원인을 지병에 의한 사망으로 결론을 내렸다. 증평의 한 병원에서 발급한 검안서에 ‘병에 의한 사망’으로 돼 있었던 데다 유족들로부터 A씨가 고혈압과 천식을 앓고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출동한 경찰은 A씨 방 안에 설치돼 있던 폐쇄회로(CCTV)를 확보했지만 오후 6시가 되도록 이를 확인하지 않았다. CCTV는 혼자 사는 김씨를 위해 유족들이 설치했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휴대폰 앱으로 CCTV 영상을 확인하려 했지만 앱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고, 유족들이 사고 당일 CCTV 메모리카드를 돌려달라고 말해 6시10분쯤 둘째 아들에게 줬다”고 해명했다. 살해 현장이 담긴 결정적 단서를 놓친 셈이다.

유족은 단순 자연사라는 경찰의 말을 믿고 지난 23일 장례를 마쳤다. 하지만 A씨의 제삿날을 정하기 위해 CCTV를 영상을 확인한 유족은 놀랐다. 이 영상에는 한 남성이 집에 몰래 들어와 A씨의 목을 조르고 시신을 추행까지 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유족은 녹화 영상을 지난 23일 오후 경찰에게 전달했고 신씨는 불과 몇 시간 만에 검거됐다. 청각 장애가 있는 신씨는 1㎞가량 떨어진 마을에 사는 주민으로 A씨와 평소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신씨는 경찰 조사에서 “물을 마시러 할머니 집에 들어갔다가 범행을 저질렀다”며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살해 혐의로 신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증평=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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