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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13위, 행복 58위 한국…성심당서 해법 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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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돈이 많으면 행복해지는가? 부(富)가 축적될수록 불행은 사라지는가?”

회계·납세 명세서 직원에게 공개
인사고과 ‘동료 사랑’ 항목이 40%
이윤의 15% 인센티브로 제공

경제학에서 풀기 어려운 질문이다. 인간의 삶에서 ‘먹고 사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여기에 필요한 게 ‘돈’이다. 돈이 없으면 삶은 고단해진다. 그렇다고 돈이 많다고 삶이 윤택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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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로피아노 소피아대 경제학과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50·사진)는 2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돈이 많다고 다 행복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 연구모임인 ‘일치를 위한 정치포럼’에서 주관한 ‘EoC(Economy of Communion), 모두를 위한 새로운 경제모델’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최근 방한했다.

그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3위인데 행복지수는 58위에 불과하다. 세계 자본주의가 직면한 도전은 이런 행복의 역설”이라고 말했다.

브루니 교수는 국제연합(UN)이 매년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작성에 참여하는 학자다. 세계행복보고서는 UN이 156개국별로 행복지수를 산출해 2012년부터 발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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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니 교수는 “미국에선 이미 1970년대부터 부가 축적되는데도 행복지수가 떨어졌다”라고 소개했다. 대표적인 연구가 74년 리처드 이스털린 남캘리포니아대 교수가 발표한 ‘이스털린 역설’이다. 3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행복도와 1인당 국민총생산(GNP) 사이에 관련성을 찾을 수 없었다.

예를 들어 60년 서독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나이지리아의 20배였는데 행복도는 오히려 조금 낮았다. 이 학설은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브루니 교수의 주장도 이런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그는 기업가나 경영자 홀로 부를 쌓는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주장을 편다. 가장 필요한 건 공동체 전체가 향유하는 행복이라는 것이다.

이런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게 ‘EoC(모두를 위한 경제) 기업’이다. EoC 기업이란 기업가와 노동자, 경영자와 관리자, 생산자와 소비자가 생산과 이윤 창출에 함께 참여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곳을 말한다.

브루니 교수는 한국의 대표적인 EoC 기업으로 대전의 제과 및 외식 사업체인 성심당을 꼽았다. 성심당은 매년 회계·납세 명세서를 직원에게 공개하며, 이윤의 15%를 직원에게 성과보수로 지급한다. 직원 인사고과의 40%를 차지하는 기준은 ‘동료 직원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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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당 김미진 이사는 “99년에 국제 EoC학교 강의를 들은 뒤 ‘고객은 왕’이라는 기존 서비스업 통념에서 벗어나 고객은 물론이고 직원, 협력업체 관계자 등과 함께 이익을 나누는 게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브루니 교수는 “(경제학의 관점도) 시장 논리를 중시할 것이냐, 시장을 필요악으로 보고 국가가 나서야 할 것이냐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행복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라고 말했다. 

◆루이지노 브루니=이탈리아 피렌체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영국 이스트앵글리아 대학에서 경제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탈리아 시민경제학교를 설립해 20년째 운영 중이다.

임채연 기자 yamfl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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