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 하나의 중국 언급 않고 “양안 대화”…중국 “미완성 답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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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잉원(蔡英文) 신임 대만 총통이 모호성을 최대한 살린 수사법으로 중국과의 극한 대립을 피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92공식’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인정을 촉구하며 차이 총통을 압박했다. 대만 독립 성향이 강한 민진당 정권의 출범으로 양안 관계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불확실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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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쑨원 초상화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하는 차이잉원 대만 신임 총통. [사진 타이베이 사진기자협회]

차이 총통은 20일 오전 9시 취임 선서와 함께 14대 대만 총통에 취임했다. 이어 총통부 앞 광장에서 열린 취임 경축행사장에 나온 그는 취임사에서 “1992년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의 기구가 상호 이해와 구동존이의 정신으로 소통과 협상을 진행해 약간의 공동 인식과 이해를 이뤘다”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쟁점인 ‘92공식(共識)’에 대해선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대신 “기존 양안의 대화와 소통 기제를 계속 유지해 나갈 것”이라며 현상 유지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양안 관계 불확실성의 시대로
취임사서 모호한 입장 유지한 채
“1992년 양안 회담 존중” 밝혀
중국 “92공식 명확히 인정을” 압박

차이 총통이 존중한다고 밝힌 역사적 사실이란 92년 중국과 대만의 당국자들이 비공개 회담을 한 사실을 말한다. 중국은 당시 일중각표(一中各表), 즉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의하되 어느 쪽이 중국을 대표하는지는 각자 해석에 맡긴다는 92공식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대만의 직전 집권당인 국민당도 이를 인정한다. 하지만 대만 독립, 즉 대만과 중국은 별개 국가란 인식이 강한 민진당은 그런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공표된 합의문이 없기 때문에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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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식에서 차이 총통(가운데)과 천젠런 부총통(오른쪽), ‘겟아웃(Get out)’ 문구를 든 여가수 바나이(巴奈·47)가 ‘메이리다오’를 부르는 모습. ‘겟아웃’은 바나이가 벌이고 있는 원전 반대 캠페인의 구호다. [사진 타이베이 사진기자협회]

중국은 차이 총통 당선 직후 다양한 압박수단을 동원해 92공식을 수용하라고 몰아붙여 왔다.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의 마샤오광(馬曉光) 대변인은 지난 11일 “현상 유지를 원한다면 92공식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양안에 긴장과 위기가 생기면 현상 변경을 시도하려는 측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경고성 발언까지 했다.

차이 총통의 취임사는 이에 대한 답변인 셈이다. 그는 지난 1월 총통 선거 과정에서도 회담 사실 자체는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약간의 공동 인식과 이해를 이뤘다’는 부분이 이번에 새로이 추가된 대목이다. 하지만 92공식의 핵심인 ‘하나의 중국’ 수용 여부는 여전히 모호성의 영역 속에 남겨 뒀다.

차이 총통의 모호한 입장은 발등의 불인 경제재생 등 산적한 국내적 과제를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취임사에서 “유권자들이 나를 뽑아 준 의미는 ‘문제해결’이란 네 글자로 요약된다”며 민생·경제·사회정의 등 내정 부문에 취임사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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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명확한 확인을 다시 촉구했다. 국무원 대만판공실은 이날 오후 담화를 통해 “92공식과 핵심 함의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인정하지 않았고, 양안관계의 평화안정 발전을 확보할 구체적인 방법도 제시하지 않았다”며 “(차이 총통의 취임사는) 미완성의 답안”이라고 평가했다.

차이 총통이 92년 이후 최근까지 맺어진 양안 간의 각종 합의를 존중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대만판공실과 대만 대륙위원회의 연락 소통 시스템 등은 92공식이란 정치적 기초 위에 세워진 것”이라며 “하나의 중국 원칙이 확인되어야만 양안의 제도화된 교류가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차이 총통의 모호한 담화에 대해 ‘더 완전한 답안을 내놓으라’고 재촉구하며 다시 공을 대만 쪽으로 되던진 셈이다.

타이베이=예영준,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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