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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씨네통] 현실이 불행할수록 환상은 커진다

TONG

입력

업데이트

그댄 환상 속에 살텐데, 'fantasmagorie(팡타스마고리)

씨네통, 'fantasmagorie'

장르

애니메이션(2D Digital Cut Out, Drawing On Paper)

러닝타임

11분 25초

제작연도

2015

만든사람

윤수진·이지호·신정원·박지원(한국애니고 애니과 3)

제작의도

열악한 경제 수준이나 사회적 지위는 인간을 끝없이 비참하게 만든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들은 그저 순응하고,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며 살아갈 뿐이다. 그러나 꿈을 꾸는 것은 모두 자유롭다. 언젠간 펼쳐질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현실에 벽에 부딪히며 차츰 공상이 되어가고 다시 망상이 된다. 그리곤 현실적 기초도 가능성도 없는 환상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심리적인 고통을 두 가지의 다른 기법으로 연출했다. 현실이 힘들수록 화려해지는 꿈, 그리고 그 속에서 결국 현실을 완전히 외면하게 되는 사람들의 심리적 고통을 표현하려 했다.

줄거리

길거리 악사인 남자, 그는 오늘도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에 온다. 술과 담배만이 그를 위로한다. 큰 소파에 몸을 맡기고 눈을 감는 순간 그만의 환상여행이 시작된다.

수상정보

2015 제15회 대한민국청소년미디어대전 대상·청소년심사위원상, 제1회 한중일애니메이션창의대회 2등 등 다수


지난 17일 한강 작가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는 “소설을 쓰는 것은 제 자신에게 질문하는 방법이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었습니다. 때로는 고통스러웠고, 힘들었지만 계속해서 그 질문 안에 머물고자 노력했습니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혔죠. 한 편의 소설을 쓰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을 시간을 감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힘겨운 일임에 분명합니다. 한국애니고 3학년 박지원·신정원·윤수진·이지호 학생은 창작을 하는 전공자로서 고민을 담은 애니메이션 ‘fantasmagorie’를 만들었습니다. 에밀 콜이 1908년 제작한 세계 최초의 애니메이션 ‘fantasmagorie’과 같은 제목인데요. 환상·몽환이라는 뜻의 제목처럼 한 남자의 현실과 환상을 오갑니다.

주인공은 길거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여 생계를 유지하는 가난한 악사입니다. 하루 벌어 간신히 하루를 버티는 그의 유일한 낙은 음악을 들으며 술과 담배에 탐닉하는 것입니다. ‘생활’에 지친 남자가 ‘녹색 소파’에 몸을 맡기자 눈앞에 환상이 펼쳐집니다. 소파의 녹색 빛은 남자의 환상이 커질수록 채도가 높아집니다.

남자의 환상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음악으로 성공하고 싶은 욕망과 성적인 욕망입니다. 눈여겨 볼 것은 현실과 환상을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현실은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환상은 콜라쥬로 연출했습니다. 로토스코핑은 사람의 움직임을 카메라로 찍은 뒤 한 프레임씩 애니메이션으로 옮겨 그리기 때문에 사실적인 느낌이 드는 반면, 콜라쥬로 연출된 환상은 어딘지 모르게 기묘합니다. 하지만 마냥 기괴하고 거부감이 들기보단 흥미롭고 아름다운 느낌에 가깝습니다.

작품을 기획한 이지호 학생은 '현실이 불행해질수록 꿈은 행복해진다'는 아이디어를 모티프로 삼았고, 콜라쥬를 통해 현실과 환상을 대조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네 명의 친구들은 주인공 캐릭터 디자인에 몰두했습니다. 현실에 지친 삼십대 후반의 남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여 다양한 의견이 오갔고 그 중에 신정원 학생이 표현한 캐릭터가 가장 적합하다는 의견에 정원 학생이 캐릭터 디자인을 맡아 작업했습니다.

기사 이미지

특히 디지털이 아닌 수작업이 큰 비중을 차지한 그림에서 기성 애니메이션 못지않은 작품성이 느껴집니다. 윤수진 학생은 “흑백 볼펜으로 표현할 때 나타나는 잔 선의 존재는 굉장히 미묘해요. 하지만 작품의 분위기를 결정하는 데 큰 차이를 미치기 때문에 아날로그 방식을 택했어요”라고 말했죠.

하지만 작품이 마냥 호평을 들었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아기자기한 그림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청소년 작품답지 않다는 의견을 듣기도 했고, 학교폭력이나 친구 문제를 다루지 않았기에 영화제에서 환영받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antasmagorie'가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괴리’를 주제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프리 라이센스 음악 사이트에서 2000여곡이 넘는 음악을 들으며 주제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찾아냈던 박지원 학생의 노고가 숨겨져 있기도 합니다. 대사가 거의 없지만 영상과 어우러진 음악이 작품의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힘, 그 자체가 되었죠.

한국애니고 3학년 이지호(왼쪽부터), 윤수진, 박지원, 신정원

네 명의 청소년 감독이 ‘예술가’로서 겪는 어려움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무리 기획이 좋아도 끝까지 퀄리티 있게 작품을 완성하기 어렵다"

(이지호)

"창작 에너지가 고갈되는 시기가 있다"

(윤수진)

"이미 존재하는 것과 겹치지 않도록 참신하게 생각하는 게 어렵다”

(박지원)

"무엇보다 부모님이 제 작품을 이해하지 못할 때 섭섭하다"

(신정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에이터로서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동시에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죠. 창작이 밥 먹여주지는 않지만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생각을 나누는 일이 행복하다고 말입니다.

'fantasmagorie'를 만든 네 명의 청소년 감독이 추천하는 예술을 다룬 영화

'패왕별희' 첸 카이거, 1993

“장국영의 섬세하고도 우아한 연기가 정말 좋아요. 작품의 스케일이 크기 때문에 부드럽고도 거친 면까지 모두 느낄 수 있어요." (윤수진)

'빌리 엘리어트' 스티븐 달드리, 2000

“아빠와 아들이 발레와 현실을 두고 타협하고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이 감동적이에요. 원래 천재를 발굴하는 작품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박지원)

'위플래쉬' 데미언 차젤, 2014

“천재성을 발굴해내기 위해 혹독한 과정을 겪어야 하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주인공이 드럼을 하기 위해서 의지 있게 해내는 모습이 저에게 자극을 많이 주더라고요.” (신정원)

'크리스마스에 기적을 만날 확률' 곤 사토시, 2003

“예술을 다룬 애니는 아니지만 작품 자체가 완벽해서 추천하고 싶어요. 실사체의 작화, 완벽한 기승전결, 전 연령가이지만 마냥 유치하지 않아요. 무엇보다 소수자의 이야기를 다룬 게 가장 마음에 들어요.” (이지호)

글·사진=김재영 인턴기자 t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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