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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지방의회 의원들 못된 행태 도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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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송의호
송의호 기자 중앙일보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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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사회부문 기자

경북 봉화군의회 의원들은 지난해 금배지를 새로 만들었다. 국회의원처럼 배지에 한글로 ‘의회’를 새긴다는 이유였다. 순금으로 만들어 개당 40만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정작 국회의원 배지는 99% 은으로 만들어 가격이 3만5000원이다. 군의원들이 국회의원보다 11배나 비싼 배지를 달고 다니는 셈이다. 군의원과 의회 직원들에게는 30만원짜리 고가 등산복과 15만원짜리 운동화 상품권도 지급됐다.

이 과정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경비를 처리해 제보를 받은 봉화경찰서가 수사 중이다. 군의원들은 수사가 시작되자 당초 19일부터 떠나려던 7박9일 일정의 미국 연수를 막판에 취소했다. 이에 따른 위약금 1600여만원을 세금으로 물었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일탈과 구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잊힐 만하면 도진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해 말 지방의원들의 도덕적 해이를 점검한 사례를 보면 경악할 수준이다. 업무추진비는 쌈짓돈이나 마찬가지였다. A광역시의회 부의장은 본인이 대표로 있는 음식점에서 업무추진비 카드를 1년간 39회 사용해 1420만원의 부당이득을 챙겼다. B시의회 의장 등 4명은 6개월간 정당한 사유 없이 주점 등에서 업무추진비를 쓴 것으로 드러났다. 업무추진비 강령 위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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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4·13 총선이 끝나자마자 전국 각지에서 지방의원들의 외유가 추진되고 있다. 일정의 대부분은 관광이다. 부산 중구의회 의원 6명은 시민단체의 외유 비판을 묵살하고 4박5일 일정으로 19일 홍콩·마카오·대만으로 떠났다. 대전 서구의회 의원 7명도 지난달 6박8일 일정으로 스위스·독일을 다녀왔다. 심지어 일부 동료 의원들도 모르게 연수를 추진했다고 한다.

설령 필요한 해외 연수라 하더라도 횟수가 지나치게 많아 예산 낭비라는 지적도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지난해 17개 광역 시·도 의회의 국외여행 기록을 분석했더니 경기도의회는 17개월간 31회나 됐다. 월 1.8회꼴로 해외를 다녀온 셈이다.

지방의회는 자체 예산 집행과 관련해 자치단체로부터 어떤 감사나 견제도 받지 않는다. 자체 판단에 맡기다 보니 사각지대다. 그런데도 지방의원들은 국회의원처럼 유급 보좌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해 질타를 받고 있다.

지방재정 상황은 갈수록 열악해지는데 지방의원들의 예산 낭비 행태는 끊이질 않는다. 순금 배지를 단다고, 폼 잡고 해외를 드나든다고 지방의원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지역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진정한 공복(公僕)이라면 한 푼의 혈세라도 알뜰하게 쓸 각오로 투명한 조례부터 만드는 것이 도리 아닐까.

송의호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