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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 몰락’ 먼저 겪었지만 관광업으로 부활한 통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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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오늘 물 좋심니더. 싸게 해드릴게예.”

시장 거리에 울리는 어물전 주인의 경쾌한 목소리가 관광객 발길을 붙잡았다. 지난 16일 오후 경남 통영시 중앙시장은 활력이 넘쳤다. 주부 주차단속 요원인 정미옥(52)씨는 “주말엔 관광버스가 몰려 시장 앞 1㎞ 구간이 가득 찬다”고 말했다. 시장은 지난해 220만 명이 찾은 통영의 대표적 관광지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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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 조선소의 2012년 모습. 통영은 조선업 침체로 대다수 조선사가 문을 닫거나 경영 정상화 작업을 밟았다. [통영=송봉근 기자], [중앙포토]

통영엔 한때 ‘희망’이 없었다. 2010년 지역의 유력 기업인 SLS조선(현 신아SB)이 실적 부진으로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같은 해 성동조선해양도 채권단 자율협약에 돌입했다. 결과는 대량 실업으로 이어졌다. 2010~2012년 조선업 종사자 600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12년 한국산 패류의 수입을 중단하자 대표 수출품인 굴 수출도 어려워졌다. 지역 경제는 파탄 직전까지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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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젠 해마다 660만 명이 찾는 뜨거운 관광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한려수도를 내려다 보는 한려수도조망케이블카와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동피랑 마을, 이순신 공원 등을 조성해 발 빠르게 관광업으로 ‘지역경제 구조조정’을 벌인 덕이다. 지난 몇 년간 통영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조선업 쇠락의 늪에서 빠져 나온 비결은 시의 민첩한 대응과 주민들의 적극적 협력이 빚은 합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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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의 씨앗이 된 케이블카의 경우 2008년 3월 완공해 8년 만에 이용객 1000만 명을 돌파했다. 관광객이 늘자 숙박시설과 상가도 증가했다. 건설 경기도 따라서 좋아졌다. 동피랑 마을 등 관광지 개발이 뒤따르면서 ‘선순환’이 시작됐다. 꿀빵과 충무김밥은 원조를 넘어서 지역 명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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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 조선소의 지난 16일의 중앙시장 모습. 현재는 관광·수산업으로 주력 산업을 바꾸며 연간 660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로 성장했다. [통영=송봉근 기자], [중앙포토]

수산업 회복 작전도 병행했다. ‘바닷가 화장실’ 설치 등 해안 정화작업을 벌였다. 뱃사람들을 상대로 교육도 펼쳤다. 미국 백악관과 농무부를 찾아가 수산물 시식 행사도 치렀다. 이 덕분에 통영 앞바다는 청정해역을 뜻하는 ‘FDA 지정 해역’으로 인정받으며 굴 수출도 2013년 4800t에서 지난해 7500t으로 늘었다.

6000명 실직 지역경제 파탄 몰리자
케이블카·동피랑 등 관광에 주력
용접공이 굴양식자로 직업 전환도
관광객 연 660만명 몰려 경기 살아나
정부는 171억 지원, 시는 취업교육
“다른 곳도 신성장 산업 찾아 활로를”

조선소에서 실직한 뒤 중앙시장에 건어물 가게를 차린 전근수(44)씨는 “돈벌이는 조선소에서 일할 때의 80% 정도지만 내 일을 할 수 있어 보람차다”며 “용접공 중에 회사를 그만두고 굴 양식으로 성공한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먼저 매를 맞은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이어진 셈이다.

통영시 관계자들은 “정부가 대규모 실직 사태를 우려해 ‘고용특별지구’로 지정한 것도 ‘산업 전환’에 힘을 실어줬다”고 강조했다. 2013년부터 2년간 특별지구로 지정된 동안 171억원의 예산을 통해 각종 고용 지원 사업과 소상공인 지원이 이뤄졌다. 또 폴리텍대학과 연계해 재취업 교육에도 나서 ‘실직 방패막이’가 됐다.

고종성 통영시 지역경제과장은 “직접 돈을 주기보단 직업 교육을 통해 경제활동 의욕을 북돋았고 수산업·문화관광업을 핵심 가치로 소상공인 지원을 펼친 전략이 효과를 봤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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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와 같은 시도는 다른 나라의 조선업 중심지에서도 볼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조선 도시였던 일본 나가사키도 2000년대 초 업황 침체로 어려움을 겪자 ‘크루즈 관광’을 부양하는 등 산업 전환을 통해 회생을 모색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구조조정을 계기로 먼저 범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지역 산업 재편의 밑그림을 그리는 동시에 신성장 산업을 마련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통영=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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