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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테오 “난 인간보다 정확”…피아니스트 “음악 파괴 못 참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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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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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성남아트센터에서 피아노 배틀을 벌인 로봇 테오 트로니코(왼쪽)와 인간 연주자 로베르토 프로세다. 테오는 2007년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졌고, 공연 외에 TV 토크 프로그램에도 종종 출연한다. [사진 오종택 기자]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으로 인공지능(AI)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는 가운데 16일 경기도 성남아트센터에서는 인간과 로봇의 피아노 배틀이 열렸다. 53개 손가락으로 1000곡을 연주할 수 있는 로봇 피아니스트 테오 트로니코와 이탈리아 연주자 로베르토 프로세다가 무대에 올랐다. 모차르트의 ‘터키 행진곡’,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왕벌의 비행’ 등 똑같은 곡을 번갈아 연주하고 상대 연주에 대해 서로 품평했다.

로봇 vs 인간 피아노 배틀
‘쇼팽의 녹턴’ 로봇 기계적인 연주
피아니스트 감성적 표현 못 따라가
“신기함 이상 의미 없는 싱거운 승부”

전설적 피아니스트들의 명연주 재현 대결도 벌어졌다. 객석은 성남지역 초등학생들로 채워졌다. ‘학교문화예술교육주간’을 맞아 성남문화재단 등이 기획한 공연이었다.

공연은 로봇이 시작했다. “악보대로 연주해야 작곡가에 대한 예의다. 나는 인간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연주할 수 있다”며 도발하듯 말한 뒤 쇼팽 녹턴 Op.9-2를 연주했다. 연주는 정확했지만 단조롭고 평면적이었다. 프로세다가 발끈하듯 끼어들었다. “음악을 파괴하는 연주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중단시킨 후 같은 곡을 다시 연주했다. 감정과 표정이 깃들어 음악에 혈색이 도는 연주였다. 템포 루바토(템포를 자유롭게 조절하는 연주)를 써서 쇼팽의 맛을 살렸다.

이어진 공연에서도 로봇은 내내 기계적인 연주를 선보였다. 연주자 고유의 해석이 실리지 않은 딱딱하고 정확한 연주라 “아직은 로봇이 인간의 예술적 표현을 따라잡지 못했다” “신기함 이상의 의미가 없는 싱거운 승부였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테오는 2007년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로봇이다. 악보를 입력한 미디파일을 통해 연주하는 일종의 미디플레이어로, 아주 초보적 단계의 로봇이다. 이날 테오는 “16개 언어가 탑재돼 있다”며 한국어로 말했지만 실제로는 무대 뒤 성우가 한 말이었다. 때문에 이날 배틀은 실제 배틀이 아니라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일깨운 일종의 ‘약속 대련’이었다.

사실 이날 배틀은 실력파 피아니스트 프로세다의 실험적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열린 것이다. 프로세다는 “기계가 따라올 수 없는 인간 예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다”며 로봇과 함께 순회 배틀을 벌이고 있다. 이 프로젝트 공연은 지금까지 미국·중국 등 7개국에서 열렸다.

공연 후 프로세다는 “로봇의 연주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 예측 가능해서 재미없다. 예술은 인간만의 분야다. 완벽을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의 감정과 자신의 감정을 듣고 소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테오를 제작한 엔지니어 마테오 수치는 “트로니코는 여행가방 두 개에 들어가 이동성이 좋은 로봇”이라며 “53개의 손가락으로 연주하는 일종의 미디(디지털 뮤직 파일) 플레이어”라고 설명했다.

글=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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