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용차 직접 몰고 청와대 떠난 이병기

이병기(69)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5일 오후 3시20분쯤 청와대 춘추관(기자실)을 찾았다.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비서실장 교체를 발표한 지 30분 후 ‘고별인사’를 위해서였다.

총선 패배 뒤 여러 차례 사의 표명
박지원 “야당에 협력 구하려 노력”

이 전 실장은 “떠나는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느냐”며 인터뷰를 사양하고 기자실을 한 바퀴 돌면서 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소감을 묻는 질문에 “소감은 뭐, 떠날 때가 있는 것이지”라고만 했다.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15일 자신의 승용차를 직접 몰고 청와대를 떠나고 있다. 이 전 실장은 이날 인터뷰는 사양하고 기자들과 인사만 나눴다. [사진 김성룡 기자]

그러곤 곧장 자신의 그랜저 승용차를 직접 몰고 춘추관을 떠났다. 운전대를 잡고선 기자들에게 미소를 지은 채 손을 흔들어 인사하기도 했다. 지난해 2월 국정원장으로 재직하다 청와대로 들어온 지 1년2개월여 만이다.

이 전 실장은 새누리당의 4·13 총선 패배 이후 “책임을 져야 하고 물러나야 할 필요도 있다”고 주변에 얘기해왔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결심만 기다리는 상황이 지속되다가 지난주 초 박 대통령과 결론을 냈다. 이 전 실장은 기자와 통화에서도 “총선 직후부터 여러 차례 직간접적으로 (대통령께) 말씀을 드렸다. 누군가는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일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전 실장은 청와대의 약점으로 지적돼 온 소통 문제를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여야 뿐 아니라 언론 접촉도 늘려 ‘청와대 소통 부재’라는 비판에 대한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 막혀 있던 한·일 관계에 숨통을 틔우는데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지난해 11월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일 정상회담과 12월 28일 양국 간 위안부 합의 타결 때도 막후에서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국가안보국장과 보조를 맞췄다고 복수의 정부 소식통이 전했다.

이날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전 실장이) 비서실장으로 재임하면서 야당과 비공식적 소통을 했고 나름대로 저에게도 이해와 협력을 구하려 노력했다”고 평가했다. 야당 원내대표가 퇴임하는 비서실장에 대해 공개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내리는 건 드문 일이다.

글=신용호 기자 nova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