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동규-시인|마종기의 『남미식 겨울』|정지규의 『복사꽃 만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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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마종기의 『남미식 겨울 외 2편』 (문예중앙)은 우리와 떨어져 살면서도 계속 함께 살고 있는 한 시인의 체취를 다시 확인시켜 준다. 그 체취는 한국인에 대한것이 주로 나오는 그의 시의 소재때문만이 아니다. 이번에 발표된 세편의 시에도 『고아의 정의』같은 미국에 입양와 서양부모의 폭행으로 죽은 한국고아의 수난을 노래하는 작품이 있다. 그리고 그 수난을 맞는 그의 분노가 「정의는 때때로 내게는 개밥이다」라고 첫머리부터 폭발하고있다.
그리고 그 체취는 우리나라에서 보낸 삶의 체험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작품들 때문도 아니다. 같이 실린 『자유의 피』가 그런 작품으로 지난해 다녀갈때 맛본 최루탄의 추억이 숨겨진 조국에대한 사랑과 섞여 아름답게 형상화되어 있다. 그렇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그가 우리와 같이 살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것은 그 「숨겨진 사랑」 때문인 것이다.
몇 해마다 내 갈증을 풀려고 고국에 돌아오면
아직도 서울의 공기는 수상한 냄새를 품기고
서울의 공기는 수상한 소리를 연발하고
남산 밑으로 많이 뚫린 터널에서도
나는 성욕 잃은 쥐같이 재채기만 했었지.
이것은 방랑자의 체험이 아니다. 사망하고 있는 자의 현재진행형의 고백인 것이다. 그렇기때문에「자유가 뜨거운 속삭임같이 달콤해지면/다시는 그 많은 재채기를 안해도 될것 같았어」같은 좀지나치게 「달콤한」귀절도 절실하게 들리는 것이다.
그 사랑은『고아의 정의』에도 숨어있다. 끝행의「정의보다 훨씬 높고, 맑고, 따뜻한 것」 이 무엇이겠는가? 사람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사랑이 낱말로 나타나지 않고 숨어서 온기를 주는데 그의 매력이있고, 그 매력이 계속 우리와함께 살고있는 것이다. 『남미식 겨울』의 정치적 상황도 우리나라를 보는 그의 시선과 병치되어있다. 그 시선은 우리의 것이다.
정진규의 『복사꽃 만개』(현대문학)도 눈을 끄는 작품이다. 한껏 만개한 복사꽃무리와 만나는 마음의 상태를「만개로 활짝 웃는다. 만개로 대답하고 만개로 걸어간다.
만개로 글씨를 쓰고 만개로 밥을 먹고 만개로 물을 긷는다. 실상 이제 그는 다 열어버려 당도해야할 곳이 없다」로 표현한것은 그런 마음의 상태가 될 수 밖에 없으리라는 생각마저 들게 해준다. 이 자연의 만개앞에서 시인이 선적인 명상을 하는 것은 동양인이기 때문일까?
나는 떠나야했다. 그의 어디에도 나는 남아있지 않았으며 혹은 남아있기도 하였다.
이 귀절은 앞의 「다 열어버려 당도해야할 곳이 없다」와 공명을 일으키며 인간의 초탈이 자연현상과도 공모관계에 있음을 나타내 준다.
끝으로 정두리의 『테레사씨 꽃가게』와『토우』 (현대문학)의 조용한 아름다움을 언급하고 싶다. 그의 귀절 「제냄새 풍기며 사는 법을 배우느라고」처럼 그의 시는 제 냄새를 풍기는 삶의 구조가 무엇인가를 낮은 목소리를 통해 보여준다. 앞으로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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