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설마'하는 동안 核처리 끝낸 북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 보관돼 있던 사용후 핵연료봉의 재처리를 완료했다는 주장은 결코 소홀히 취급돼선 안 된다. 핵개발을 대미협상에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북측 전술은 전혀 새롭지 않다.

하지만 그때마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은 이를 북측의 전형적인 벼랑끝 전술로 치부해 왔다. 지난 수개월 동안 북한의 행보가 예상대로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시간이 북측에 유리하지 않다는 논리로 일관하며 북한과의 내실있는 대화를 거부해 왔다.

물론 길게 본 시간은 북측에 유리하지 않다. 그러나 당장 닥친 북한의 핵위협을 과거처럼 그들의 구태의연한 전술로 간주하기엔 사태가 심각한 지경에 돌입하고 있다고 본다.

게다가 한.미.일 3국은 정보공유의 한계와 해석상의 편차로 인해 입장조율에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북측 주장을 허풍이니, 벼랑끝 전술이니 하며 스스로 의미를 축소하려 하지 말고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상대가 개발을 완료했다는데 우리가 "아닐거야"하며 위안을 찾으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냉철한 인식에 기초한 대북정책과 전략을 수립할 시점에 왔다. 그것이 당근이든 채찍이든 북한의 핵 처리가 사실이라는 엄중한 현실을 바탕으로 대응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측 대응 결과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북한에 있음을 명백히 해 둘 필요가 있다.

북한의 핵재처리 정보와 관련, 아직 추정단계라는 게 한.미.일의 공통된 입장이지만 정부는 최악의 경우까지 대비해야 마땅하다. 이를 위해 우방 간에 정보 공유뿐 아니라 동일 정보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까지 입장 조율이 필요하다.

나아가 중국과 러시아 등과도 대북 핵정보를 둘러싼 조율이 요구된다. 이런 사전 노력 없이는 다자간 대화나 대북압박 모두 그 실효성이 의문시되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러한 선언을 한 이상 관련국 간의 합의 도출을 위한 외교 노력은 서둘수록 좋다. 정부의 창의력과 함께 긴장감있는 외교행보가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