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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의 실세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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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하반기 경제운용의 틀을 새롭게 다듬자는 정부안의 논의는 5월까지의 경제추세로 미루어 바람직한 방향이다.
경제운용의 틀은 되도록 연초의 계획 대강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올해 상반기의 실적은 한마디로 실망적이다. 우선 무역계획과 국제수지계획이 크게 빗나가 차질을 빚고있으며 통화계획도 부실정리와 은행특융으로 인해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상반기까지의 추세로 미루어 올해 성장과 고용목표조차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하반기 경제정책의 줄거리는 수출과 국제수지개선에 초점을 맞추어 재편성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경제운용계획의 수정은 전면적인 경기부양책으로의 급선회보다는 애로를 형성하고 있는 전략부문을 중점적으로 해소한다는 자세가 긴요하다.
그것은 재언의 여지없이 국제수지의 애로 때문이다. 문제의 초점이 수출부진과 국제수지애로에 있는 만큼 이 양자를 동시에 해결 또는 완화할 수 있는 최적의 정책조합을 찾아내는데 중지를 모아야할 것이다.
우선 전자의 수출부진 문제는 관점에 따라 다양한 진단이 나올 수 있으나 그 주된 배경으로 미·일시장의 침체와 구주·중동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가 지적되어왔다.
우리의 주시장인 미·일경제의 예상 밖의 침체는 적어도 올해 안에 큰 변화를 보일 전망이 희박하다는 것이 전문기관들의 예측이다. 미·일 시장의존도가 높은 여러 중진국들이 지금 겪고있는 수출부진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로서는 이들 시장의 경기회복을 기다리면서 기초적인 경쟁력의 쇄신을 위한 설비개선 등 장기전략을 강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단기적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는 수단들이 광범하게 마련돼야 하며 그 중요한 수단의 하나가 바로 환율정책이다.
우리의 환율정책은 전통적으로 억압형·고평가형 정책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는 물론 60∼70년대의 인플레정책의 반사작용이었지만 그 같은 고평가정책의 장기화가 결과적으로는 오늘의 외채누적과 국제수지애로의 한 뿌리가 되어온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더우기 올 들어 수출부진을 함께 겪고있는 경쟁국들, 특히 일본은 올 들어 과감한 평가절하를 통해 경쟁력을 쇄신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 환율은 대체로 너무 보수적인 실세화에 머무르고있어 경쟁력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환율의 적극적 운용이 국제수지개선의 가장 유효한 정책수단인데도 그 활용을 계속 유보시켜 온데는 물론 외채상환부담이나 국내물가영향 등의 이유가 없지 않으나 이 같은 환율실세화의 부정적 영향들은 그 작용메커니즘이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점을 고려해야한다. 단기적 고통보다는 장기적 안정을 추구하는 안목과 선택의 문제다.
평가절하의 인플레효과는 수입구조의 변화로 인해 완충벽이 두터워진 반면 무역자유화의 확대로 가격탄력성이 높아져 평가절하의 국제수지 개선효과는 옛날과 비교할 수 없이 커진 점을 고려해야한다.
특히 구주·중동· 중남미 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를 개선하는데도 환율실세화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보다 적극적인 국제수지대책으로서의 환율정책 운용이 긴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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