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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혐오스런 담뱃갑 그림, 부작용도 고려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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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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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순
변 호 사

국무조정실 산하에 설치된 규제개혁위원회는 정부가 추진하는 규제나 법안이 불합리하거나 불필요한 것이 아닌지를 종합적으로 심사해 제도개선을 권고하는 기관이다.

이런 규개위가 지난달 22일, 담뱃갑 상단에 경고그림을 의무화하는 국민건강증진법 시행령 개정안 조항을 철회할 것을 보건복지부에 권고했다. 규개위는 우선 편의점 등에서 담배를 식품과 함께 팔고 있는 국내 현실에서 노약자, 임신부 등 비흡연자들과 담배판매인들에게 정서적·경제적 피해를 줄 수 있는 과도한 규제로 보고, 경고그림을 꼭 상단에 배치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일부 규개위원들은 이전에 발표된 경고그림 시안들이 신문이나 방송에서 사용하기엔 지나치게 혐오스럽고 국민건강증진법을 위반해 소송의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금연단체 측은 경고그림의 혐오도가 강해야 금연효과가 크다고 항변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목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후두암 환자, 피가 선명한 폐수술 장면 등이 포함된 경고그림 시안이 ‘지나치게 혐오스럽지 않고,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국민건강증진법 조항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복지부는 규개위 결정에 불복하고 곧바로 재심을 요청했다고 한다. 금연단체들 역시 규개위가 ‘담배규제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 담배업계나 이를 대변하는 조직을 참여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을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는 규제 심사와 관련해 이해관계인과 참고인을 출석시킬 수 있다고 규정한 행정규제기본법의 근본 취지를 모르거나 무시한 처사다. 일본 도 정부가 담배 규제 방안을 추진할 때 담배회사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다양하게 수렴하고 있다.

금연단체들은 또 경고그림의 담뱃갑 상단 배치를 의무사항처럼 주장하고 있지만, 국제조약인 FCTC 역시 권고사항으로 규정하고 있을 따름이다. FCTC 당사국 180개국 중 아직 담배 경고그림이 없는 국가는 미국과 중국, 일본을 비롯해 100여 개국에 달한다.

정부는 지난해 담뱃값을 2000원 가량 올리면 흡연률이 34%포인트가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흡연률이 줄어들지 않자 최근에는 “폐암 하나 주세요” “후두암 1㎎ 주세요”라는 충격스런 방송광고까지 내보내고 있다.

필자는 국민건강증진 차원에서 복지부가 경고그림을 추진하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반드시 혐오도가 높은 경고그림으로 충격을 줘야만 금연효과가 커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가가 나서서 규제를 할 때에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설정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경고그림의 종류나 위치 등 상세한 것은 흡연자뿐만 아니라 비흡연자, 영세상인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입장도 고려해 가면서 정해야 하고, 이들이 규제의 강제로 직면해야 될 경제적·정신적 피해 등의 억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임민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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