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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식 500척 → 전문분야 270척…팬오션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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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구조조정을 한다고 다 살아나진 않는다. 핵심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되 군살을 확 빼는 ‘선택과 집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법정관리를 거쳤던 팬오션이 이런 구조조정을 거쳤다. 윤증현 전 장관 등 11인의 전문가가 모범적 구조조정 사례로 팬오션을 꼽은 이유다.

해운업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부활
공적자금 58조 투입 ‘올드GM’ 팔고
‘뉴GM’ 살린 미국 사례도 배워야

팬오션은 2012년(당시 STX팬오션)만 해도 ‘비만 환자’였다. 사업 확장을 위해 선박을 500척(해외 선주로부터 빌린 용선 포함)으로 늘렸다. 자산도 7조1502억원까지 키웠다. 세계 해운업의 ‘치킨 게임’을 버티려면 체급 상향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곧 ‘동맥경화’ 진단을 받았다. 무리한 확장 탓에 자금이 돌지 않아 거동할 수 없었다. 결국 수술(법정관리)을 거친 끝에야 되살아났다. 팬오션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선박 230여 척을 줄였다. 수익이 나지 않는 미주·유럽 등 장거리 운항을 포기하고, 불필요한 자산도 팔았다. 컨테이너 운반 대신 범양상선 시절부터 잔뼈가 굵은 곡물 등 ‘벌크선’ 운송에 집중했다. 그러자 ‘마법’이 일어났다. 2013년 -8.2%였던 영업이익률이 지난해 12.6%까지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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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회사 이름을 유지하면서 60년 노하우와 시장 인지도를 계속 확보했고, 불필요한 부분만 절제한 방식이 성공 비결”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회생에 힘입어 지난해엔 하림그룹에 인수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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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돈을 더 주는 것은 당장의 재무위기만 넘기자는 것”이라며 “망할 것은 망하고 가능성 있는 부분은 살아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유증으로 495억 달러(약 58조원)의 공적자금을 수혈받은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도 마찬가지다. 미 정부는 2009년 구조조정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올드GM’(폰티악·사브·허머)과 ‘뉴GM’(GM·쉐보레·캐딜락)으로 나눴다. 경쟁력을 잃은 올드GM을 팔아 중복 영역을 줄이고 인력조정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자생력을 확보한 뉴GM은 이듬해 미국 증시에 상장해 역대 최대 규모인 231억 달러를 조달했다. 정부는 상장으로 모집한 자금을 공적자금 회수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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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은 “한국의 조선·해운업도 겹치는 분야는 과감히 합치되 핵심 역량은 살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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