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전시 리뷰] 제주의 봄날, 예술 담은 감귤 창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4면

제주 중선농원 갤러리2 개관전 김홍주의 ‘조각과 조각’

기사 이미지

건축가 최석원씨 설계로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전시장으로 거듭난 ‘갤러리 2’ 내부. 개관전인 김홍주씨의 ‘조각과 조각’전이 8월 말까지 열린다. [사진 갤러리2]

한라산 기슭의 고즈넉한 전시장
자연광 아래 새롭게 다가오는 작품
천편일률적 여행과 다른 신선한 경험

몇십 년 제주의 감귤을 품어 주었던 창고가 전시장으로 탈바꿈했다. 한라산 기슭 중산간에 묵묵히 서 있던 해묵은 농원이 이번에는 현대미술을 품는다.

제주시 영평길 269번지에 개관한 ‘중선농원’은 다채로운 문화 시설들로 변모하고 있는 섬 제주에 또 다른 향취를 더해주는 장소다. 큰 창고는 비영리 전시장인 ‘갤러리2’, 작은 창고는 카페, 부속 건물은 예술·인문 도서관인 청신재(晴新齋), 거주 공간은 게스트 하우스 태려장(太麗莊)으로 변신했다. 화산암의 색채에 해묵은 세월이 젖어들어 빚어내는 집의 때깔이 삼삼하다.

중선농원은 문정인(65)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동갑내기 부인 김재옥씨가 주인인 복합 문화예술 공간이다. 문 교수는 선친의 땀과 숨결이 서려 있는 감귤 농원을 어떻게 이어갈까 고민이 깊었다고 한다. 부부는 건축가 김원씨 등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한 끝에 농원을 제주에서만 만날 수 있는 다양한 감각의 체험장으로 만들었다.

갤러리2는 서울에서 같은 이름으로 화랑을 운영하는 정재호씨 도움으로 개성 넘치는 기획전을 연다. 개관전인 ‘조각과 조각’(Sculpture & Piece)은 화가 김홍주씨의 그림과 조각 단 4점으로 꾸몄다. 썩은 오동나무를 칼이나 도끼로 수없이 쪼아서 만든 인체 조각은 작가의 말마따나 “조각(Sculpture)이 아니라 조각(Piece)”이다.

기사 이미지

감귤 창고 세채가 늘어선 ‘중선농원’의 옛 모습. 화산암을 재료로 쓴 벽체의 색채에 세월의 깊은 맛이 스며있다. [사진 갤러리2]

인고의 세월을 거쳐 온 나무는 다시 작가의 몸짓을 인내로 견딘다. 작가와 나무는 그 조각조각 속에서 하나가 된다. 서로를 받아내서 태어난 작품 앞에서 관람객들은 “아!” 낮은 탄성을 내지른다. 작고 정갈한 전시장이 이들을 버팅긴다. 농원의 옛 벽체를 노출시킨 천장 쪽 박공이 또 하나의 작품을 이룬다. 자연광을 받아들인 고즈넉한 이 공간에서 봐야만 그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조각이 아닐까 싶어진다. 새털 같은 붓질로 가볍고 초현실적인 화면을 보여주는 그의 꽃 그림과 조각이 일맥상통한다.

아마도 이 그림과 조각이 번잡한 도시 한 모퉁이 화랑에 걸렸다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피어났을 것이다. 전시를 구성한 정재호 씨는 “앞으로 갤러리2는 공간의 의미를 환기시키고 자연과 인간, 전시장 안과 밖, 공감과 사색의 행간을 읽어낼 의미 있는 작품들로 채워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주인인 김재옥씨는 “천편일률적인 제주 여행 말고 올 때마다 다른 얼굴을 내보이는 제주를 지인들에게 선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말까지, 무료. 전화예약을 하고 가면 더 편리하게 감상할 수 있다. 064-755-2112.

제주=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관련 기사
▶[전시] 5월 11일~6월 11일 예매 가능한 전시 6선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