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은마 지하상가 맛있는 지도] 대치동 엄마들이 인정한 맛있는 지하세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8면

기사 이미지

여러 개의 상가가 모여있는 은마아파트 풍경. 은마 지하상가는 1979년 이후 지금까지 대치동 일대에서 명성을 유지해 왔다.

강남통신이 ‘맛있는 골목’을 찾아 나섭니다. 오래된 맛집부터 생긴 지 얼마 안 됐지만 주목받는 핫 플레이스까지 골목골목의 맛집을 해부합니다. 빼놓지 말고 꼭 가봐야 할 5곳의 맛집은 별도로 추렸습니다. 이번 회는 대치동 은마아파트 지하상가를 소개합니다.

기사 이미지

▷여기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수십년 동안 맛으로 승부하며 살아남은 오래된 가게
만나분식 떡볶이, 백의민족 왕모찌, 은마왕만두 유명
강남 키즈 추억의 공간… 외부인에겐 전라도죽집 인기

고급 자동차가 즐비한 주차장과 대규모 아파트 단지 아래 계단 하나만 내려가면 맛있는 지하세계가 펼쳐지는 약 2000평(6600㎡) 규모 상가가 있다. 출입구만 해도 일곱 개나 된다. 식당과 반찬가게, 세탁소와 산삼가게, 그릇가게와 흑염소집이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는 이곳에 강남의 입맛 까다로운 부자들이 30년 넘게 찾는 단골집이 포진해 있다. 바로 대치동 은마아파트 지하에 위치한 은마종합상가 지하 1층이다.

“여기 오래된 떡집이 있다는데 거기가 어딘가요?” 지난 5월 3일 오전 11시, 카메라를 든 여대생 두 명이 음식을 포장하느라 바쁜 반찬 가게 주인을 붙잡고 물었다. 반찬 가게 주인은 뭘 그런 걸 다 묻느냐는 표정으로 손님을 바라봤다. 주인의 입에선 “여기선 그런 게 의미가 없어요. 다들 비슷비슷하게 오래됐고, 비슷비슷하게 맛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대치동에서 10년 가까이 살았고 4년 전 은마아파트로 이사한 삼성증권 차장 김소연(46)씨도 비슷한 말을 했다. “트렌디하거나 분위기로 승부하는 소위 요즘 맛집은 은마상가에 발도 붙일 수 없다”고 했다. 수십 년 동안 끈질기게 살아남은 게 지금 은마상가에 있는 가게들이다. 얼핏 보면 은마상가의 분위기도 서울 시내 여느 시장과 다를 바 없이 허름하다. 하지만 이 허름함 뒤에 공부는 물론 여러 방면에서 아이를 최고로 키우겠다고 작정한 ‘대치동 엄마’들에게 검증받은 맛과 실력이 숨어 있다.

엄마와 아이 손님이 90% 넘어

은마종합상가가 있는 은마아파트는 대치동 학원가에서 대치역 가는 길 왼쪽에 있는 37년 된 아파트다. 인근 래미안대치팰리스, 선경아파트, 대치미도아파트, 대치쌍용아파트, 대치우성아파트와 비교해도 가장 오래됐고, 4400세대가 넘게 사는 대규모 단지다. 한때 이곳은 경기도 광주나 서울 성동구에 속했다. 하지만 1970년대 강남 개발 이후 강남구에 귀속됐다.

은마아파트 상가는 아파트 초입에 위치한 지하 1층~지상 3층의 대규모 상가다. 입점한 가게만 해도 400곳이 넘는다. 그중에서도 A블록과 B블록으로 나뉘는 지하 1층이 유명하다.

은마아파트 상가 맛집 특징은 분명하다. 엄마와 아이 손님이 90%를 넘는다. 엄마들은 반찬가게와 식료품가게에 들렀다가 아이 간식을 사러 떡집이나 만둣집에 간다. 아이들은 분식집이나 닭강정집을 번갈아 간다. 70년대부터 이 동네에 거주한 정은혜(52)씨는 “은마상가 없이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기 힘들 정도”라고 말한다. “우리 엄마는 은마아파트 상가 시장에서 장을 봐서 식탁을 차렸고, 나는 또래 친구들과 만나분식에서 떡볶이를 사 먹었고, 아빠는 퇴근길에 왕만두나 떡을 사 왔다”고 말했다. 정씨네 식탁이 곧 은마상가 맛집 축소판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상인 한 명은 “이 안에서는 누가 동네 사람이고 누가 외부인인지 딱 보면 안다”고 말했다. 어리고 앳되어 보여도 동네 주민이면 깍듯이 ‘사모님’이라고 부르고 그게 아니면 ‘적당히’ 친절하게 대한다. 그래서 상가 상인들은 외부에서 불친절하다는 평도 많이 듣는다. 상인들 입장에서는 “1년 365일 찾아와주는 아파트 주민과 수다 떨다 보면 외부인에게는 감정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다”며 “이게 아파트 상가 분위기인 것 같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시루떡은 낙원떡집, 모찌는 백의민족

맛은 비슷비슷하지만 휴일이나 평일 점심에 어김없이 줄 서서 기다리는 맛집은 눈에 띈다. 다 비슷한 분식집·떡집·만둣집·수제비집 중에서도 유독 잘 되는 집이 있다. 분야는 다양해도 각 분야 맛집 개수는 그리 많지 않으니, 먹고 싶은 음식 종류를 정해 놓고 비교하면서 먹으면 결국 단골집을 만나게 된다.

은마상가라고 하면 백이면 백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집은 ‘만나분식’이다. 시판 떡볶이 브랜드와 달리 소스의 농도가 김칫국물 정도로 밋밋하고 싱겁다. 하지만 한두 개 먹다 보면 그 맛에 중독돼서 한 접시 뚝딱 비우는 게 이 집의 매력이다. 이 동네에서 나고 자라 학창 시절 내내 만나분식 떡볶이를 먹고 자란 제일제당 밀가루 사업부의 이승연(33)씨는 “자극적이지 않고 집에서 할머니가 해준 것 같은 맛이 만나분식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 집은 부드럽고 쫄깃한 밀가루 떡을 약한 불로 오래 조려 은근한 단맛이 나게끔 조리한다.

바로 옆에는 올해 문 연 ‘튀김 아저씨’가 있다. 원래 숙명여고 앞에서 분식 파는 노점이었는데 워낙 맛있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지금 자리로 옮겨 왔다. 이 집 떡볶이 맛은 더 심심하다. 소스도 국물에 가까워서 진하거나 조려낸 맛이 전혀 없다. 대신 이 집은 튀김으로 승부한다. 똑 같은 식용유인데 재료를 넣고 건져내는 타이밍이 좋아서 기름기가 거의 없고 씹으면 바삭 소리가 나며 입안에서 재료가 고소하게 흩어진다. 주문할 때 튀김을 떡볶이 국물에 버무려줄까 묻는데, 각각 따로 먹으면 튀김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떡집은 숫자가 꽤 많다. 서울에서도 은마상가는 ‘떡의 메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낙원떡집’ ‘백의민족’ ‘대장금’ 등 맛있는 집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관리사무소에서 10년 넘게 일한 김정태씨는 “집집마다 잘하는 떡이 달라서 어느 한 집을 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흑임자랑 시루떡 생각날 때는 낙원떡집 가고, 커서 하나만 먹어도 배부른 ‘모찌’가 생각나면 백의민족에서 떡을 산다”고 했다. 그만큼 어떤 집에 가도 실망할 일은 별로 없다는 얘기다.

맛이 비슷비슷하다고는 하지만 30년 넘게 떡집을 하는 낙원떡집은 좀 특별하다. 당시 흔하던 떡집과 차별화를 두기 위해 설탕량을 줄이고 과일이나 견과류 등 떡에 들어가는 재료를 좋은 걸로 골라 썼다. 주먹만 한 모찌로 유명한 백의민족은 손님들 사이에서 ‘왕모찌집’으로 통한다. 유자·쑥 등 제철 재료를 넣어 만든 모찌는 선물용으로도 잘 팔린다. 대장금은 호박설기·두텁떡·인절미 등 언제 먹어도 부담 없는 떡 종류가 다양하다. 이바지나 답례품 떡집으로도 유명하다.

담백한 산월수제비, 중독적인 오미닭강정

테이크아웃이 어려워 외부인에게 더 인기가 많은 맛집은 ‘전라도죽집’이다. 점심시간이면 펄펄 끓는 가마솥에 죽을 담당하는 직원들이 솥을 젓고, 사람들은 줄을 서서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뚜껑이 열린 채로 끓고 있는 죽을 보며 샛노란 호박죽을 먹을지 새알을 동동 띄운 팥죽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산월수제비’도 여기 와야만 먹을 수 있는 별미다. 주문받자마자 수제비를 끓이는데 국물이 개운하고 담백해 한번 맛보면 무조건 단골이 된다. 칼국수도 별미다.

테이크아웃집은 은마상가뿐 아니라 강남에서도 유명한 ‘은마왕만두’가 대표적이다. 가게 문 연 지는 30년도 넘었다. 상가 내 정육점에서 산 돼지목살과 최고 등급 채소로 속을 꽉 채운 만두는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오미닭강정’은 국산 생닭에 매장에서 직접 만든 수제 양념으로 새콤달콤한 맛을 낸 중독적인 닭강정을 판다. 이 동네 아이들은 치킨이 아니라 닭강정을 먹고 자랐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주민 김소연씨는 “SNS나 언론을 통해 유명해진 맛집 음식 말고도 오래 산 동네 사람만 아는 맛집이 많다”고 귀띔했다. 수제 두붓집 ‘콩두야’에서 파는 우럭된장찌개, 두붓집 맞은편에서 파는 구절판, 은마왕만두 맞은편 반찬가게에서 파는 오징어링 초무침 등 별미 메뉴가 가게 곳곳에 숨어 있다.

기사 이미지

은마 지하상가 대표 맛집

튀김아저씨

기사 이미지

올 초 숙명여고 앞 유명한 튀김집 자리에 ‘이전합니다’ 팻말이 붙었다. 맛있는 떡볶이와 튀김을 파는 유명한 노점 ‘튀김 아저씨’가 은마상가로 자리를 옮긴다는 공지였다. 튀김 아저씨는 상가에서 가장 오래된 분식집 ‘만나분식’ 옆에 올 해 2월 문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국물 떡볶이와 튀김, 오뎅, 순대, 우동 등 분식집 기본 메뉴를 판다. 보들보들한 밀가루떡과 그릇에 흥건하게 고인 떡볶이 국물은 김칫국물처럼 순하고 자극이 없는 맛이다. 밀가루 옷을 얇게 입히는 게 이 집 튀김 특징인데 쫄깃한 질감이 그대로 살아 있는 오징어 튀김이 특히 맛있다. 파를 듬뿍 썰어 넣는 오뎅 국물과 곁들이면 된다. 혼자 가서 튀김과 떡볶이를 시키면 양을 조절해서 가격을 덜 받는 주인장 센스에 감탄하게 된다.
○대표 메뉴: 국물 떡볶이 3000원, 튀김 6개 3000원, 순대 3000원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8시
○전화번호: 02-557-0814
○주소: 강남구 삼성로 212 은마아파트 상가 A-65

퀸즈파이

기사 이미지

오래되고 허름한 식당들 일색인 은마상가에서 가장 화사한 곳이다. 민트색으로 칠한 벽과 빨간색 의자가 시선을 확 끈다. ‘퀸즈파이’는 서양 간식 파이를 판다. 파이는 밀가루와 버터를 반죽한 타르트 속에 과일ㆍ초콜릿ㆍ고기 등 다양한 속재료를 넣어 만드는 음식이다. 퀸즈파이에서는 ‘엄마가 만든 파이’를 콘셉트로 호두 파이, 키쉬로렌(치즈와 달걀이 들어가는 프랑스 파이), 미트 파이를 조각으로 판다. 특히 향이 진하고 단 맛이 깔끔한 유기농 메이플 시럽에 조린 호두를 가득 채운 호두 파이가 인기다. 호주산 소고기와 토마토를 다져 넣은 미트파이는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아몬드ㆍ크랜베리를 듬뿍 넣은 수제 쿠키는 아이들 간식으로 엄마들이 많이 찾는다.
○대표 메뉴: 파이 2500원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8시
○전화번호: 02-554-9300
○주소: 강남구 삼성로 212 은마아파트 상가 B-19

전라도죽집

기사 이미지

평수가 작은 상가 내 다른 식당과 달리 보기 드물게 사방을 틔워두고‘오픈키친’에서 음식을 만드는 죽집이다. 죽이 끓고 있는 거대한 솥 앞에서 수다를 떨며 솥을 지키고 주걱으로 젓는 직원들도 여럿이다. 메뉴는 단촐하지만 비닐 봉투에 담아 슥슥 묶어주는 이집 죽은 외부 사람들도 많이 사가는 별미다. 호박의 뭉근하고 달짝지근한 끝 맛이 살아 있는 호박죽이 특히 인기다. 콩과 새알이 듬뿍 들어 있어 여러 가지 식감을 즐길 수 있다. 부드럽게 뭉개지는 팥의 식감이 그대로 살아 있는 새알팥죽도 맛있다. 녹두죽은 고소하고 담백해서 이것만 찾는 사람도 많다. 주문하면 함께 나오는 김치는 지나치게 짜거나 맵지 않아 죽과 환상의 궁합이다. 테이크아웃할 때 양을 좀 더 많이 준다.
○대표 메뉴: 호박죽ㆍ새알팥죽 5000원, 녹두죽 8000원
○영업시간: 오전 10시~오후 8시
○전화번호: 02-566-9611
○주소: 강남구 삼성로 212 은마아파트 상가 B-17

은마왕만두

기사 이미지

아무리 배가 불러도 이 집을 지나다 보면 산더미처럼 쌓인 포동포동한 만두행렬에 시선을 주게 된다. 한쪽에서는 만두 피를 빚고 속재료를 만드는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이 집 왕만두는 어른 주먹보다 큰 크기도 크기지만, 적당히 두꺼운 만두 껍질 속에 알차게 꽉 들어 찬 맛있는 속재료로 유명하다. 대표 메뉴는 입구를 회오리 모양으로 야무지게 틀어 막은 왕만두다. 고기와 채소를 다져 넣은 속재료 비율이 한국 사람 입맛에 딱 맞는다. 만두피에 장식처럼 붙어 있는 파는 반죽할 때 같이 섞는다. 덕분에 끝맛이 개운하고 깔끔하다. 만두는 같이 주는 간장에 살짝만 찍어먹어야 맛있다. 팥앙금을 넣어 간식으로도 좋은 찐빵도 인기 메뉴다.
○대표 메뉴: 왕만두 6000원(4개), 찐빵 6000원(4개)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9시
○전화번호: 02-555-7715
○주소: 강남구 삼성로 212 은마아파트 상가 B-40

낙원떡집

기사 이미지

떡집의 메카 은마상가에서도 유독 단골이 많은 집이다. 하루 종일 갓찐 떡을 꺼내 진열대 위에 올려두기 때문에 언제 들러도 가장 맛있고 따끈한 상태의 떡을 사갈 수 있다. 특별히 맛있는 떡이 있다기보다는 방금 쪄 낸 떡이 가장 맛있다는 게 직원의 설명이다. 수십 가지 떡을 만들지만 쫄깃하고 담백한 절편ㆍ증편, 백설기ㆍ무지개떡 같은 기본떡, 호박과 깨를 듬뿍 넣어 만드는 제리떡은 언제 가도 만날 수 있는 베스트셀러다. 시식용 떡도 아낌 없이 꺼내놓는 집이라 즉석에서 맛 보고 뭘 살 지 고르는 재미도 있다.
○대표 메뉴: 기본떡 3000~5000원대
○영업시간: 오전 6시~오후 9시
○전화번호: 02-566-9233
○주소: 강남구 삼성로 212 은마아파트 상가 A-37

이영지 기자 lee.youngji@joongang.co.kr

[맛있는 지도]
▶해방촌, 외국인들은 HBC라 부르는 곳, 남산 아래 세계의 맛

“인스타그램 사진 보고 왔어요” 경리단길 못지않은 ‘망리단길’
송사리 사는 정릉천에 탕수육 2000원, 수제비 3000원 정릉시장
▶눈꽃떡볶이·깻잎닭강정…잠실야구팬, 신천 새마을시장서 출동 준비 끝
▶압구정역 뒷골목 주택가엔 나만 아는 맛집, 큰길엔 삼대가 찾는 명가

▶강남통신 기사를 더 보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