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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로스쿨 입시 다양성도 중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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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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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훈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입시 의혹에 대해 교육부가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3년간 입학생 6000명 중 자기소개서로 부모를 알 수 있었던 사례가 5건이었다니 소문보다는 적지만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다. ‘공정성’이라는 우리 사회의 핵심 가치를 건드린 탓이다. 자칫 미래의 법조계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번질 것 같아 걱정이다.

입시 투명성 확보 필요하지만
학점 등 정량지표로만 선발하다간
용접공·기사 자녀 못 뽑힐 수도
지원동기·성장배경 알 수 있어야

그런데 로스쿨 입시의 문제라고 지적되는 것 중에는 선발 주체가 나쁜 마음을 먹어서라기보다 상충하는 가치 사이에서 고민하다 보니 발생하는 것이 상당히 많다. 선발에서 ‘공정성’은 매우 소중하지만 유일한 절대적 가치는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공정성을 위해 자기소개서나 면접 따위의 주관적 평가를 제거하고 학점, 법학적성시험(LEET·리트), 영어 등 정량지표로 선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동시에 일부 로스쿨이 나이 많은 지원자를 차별하고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출신의 어린 학생만 뽑는다고 비난한다.

두 주장은 명백히 모순된다. 정량지표를 중시할수록 점점 더 SKY 출신 어린 학생들에게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서울대 로스쿨의 경우 객관적 정량지표만으로 선발했을 때의 결과를 추산해 봤더니 실제보다 27세 이상 합격자는 줄고 24세 미만 합격자는 늘어나며, 심지어 SKY 상경계 졸업생이 합격자의 과반수를 차지할 것으로 나타났다. 다양한 경험과 성숙한 가치관을 중시하는 정성평가로 그런 경향을 다소나마 완화하고 있는 것이다. 형식적 공정성과 다양성이 상충하는 예다.

자기소개서에 부모 직업을 왜 쓰느냐는 의문도 많다. 서울대의 경우 부모 직업을 기재하게 한 적은 없고, 다만 지원자들이 지원 동기를 밝히다 보니 부모 직업이 자연스럽게 언급된 경우가 있을 뿐이다.

그럼 지원 동기를 왜 물어보는가? 3년 만에 법률가 자격을 따야 하는 법학 공부는 결코 쉽지 않다. 법률가가 되려는 동기가 희미하면 과에서 수석을 했던 ‘공부 귀신’들도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평생에 걸쳐 좋은 법률가가 될 싹수도 그 동기에서 조금씩 드러난다. 비록 처음에는 지어 낸 동기일지라도 반복해 스스로 설득되면 없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 정설이다. 공정성만 고려하면 불필요하고 오히려 의심을 살 여지도 있지만 성장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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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기를 묻더라도 부모 직업은 못 쓰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생각처럼 간단치는 않다. 지원 동기를 쓰는 과정에서 유복한 환경만 등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서울대 로스쿨의 최근 합격생 중에도 “임금이 체불돼 고생하던 용접공 아버지”가 기댈 곳은 노동법뿐임을 경험하고 노동 전문 변호사를 꿈꾼 경우, “트럭 기사인 아버지가 실질은 노동자이지만 형식은 개인사업자라서 겪는 모순”을 보며 제도적 대안을 고민한 경우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성장 배경이나 부모 직업을 일절 못 쓰게 했다면 이런 사연도 알기 어려웠을 것이고 학점과 리트에 따라 뭉텅뭉텅 잘라 냈을 것이다.

그렇다고 ‘좋은 직업’의 기재만 금지하기도 어렵다. 아버지가 검사라고 쓰면 안 되고 소방관은 되는가? 기업 임원은 안 되고 미화원은 되는가? 일일이 구분할 수도 없거니와 그런 구분 자체가 직업의 우열을 암시하는 게 돼 비교육적이다. 명확한 법령이나 지침도 없다. 그러니 많은 학교에서 고민 끝에 직업 기재를 아예 금지하지는 못한 채 ‘당사자를 특정할 수 있는 기재’만을 금했고 그 허술한 틈을 타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부모의 좋은 직업을 기재해 합격률이 높아진 것도 아니다. 서울대의 경우 지난 3년간 총지원자 대비 합격률은 25.5%였는데 부모가 법조인이라고 기재한 지원자의 합격률은 25.2%였다. 표본이 작아 통계적으로는 무의미하지만 부모가 ‘법학 교수’라고 기재한 경우는 15.4%로 가장 적었다. ‘무직/일용직’이라고 기재한 경우는 26.1%, 아무 직업도 기재하지 않은 경우는 27.0%였다. 부모의 직업은 합격률에 영향을 미치지 않은 것이다. 미국 로스쿨입학위원회(LSAC)의 자기소개서 작성 표준지침에서는 본인에게 소중했던 성장배경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도록 하고 있다.

각 로스쿨은 교육부의 지적과 여론의 비판을 뼈아프게 받아들여 입시 공정성을 획기적으로 제고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어느 정도 확인한 만큼 자기소개서에 부모의 신원은 물론 직업도 못 쓰게 하는 것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면접 비중을 줄이고 합격자의 주요 정량지표를 공개하는 것도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거듭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정성이 매우 중요하지만 유일한 가치는 아니라는 점이다. “의심받기 싫으니 정량지표만으로 뽑겠다”는 로스쿨이 늘면 정량지표를 올리는 데 자원을 투입할 수 있는 유복한 집 자제들 비중이 더 커지고, 법률가 집단은 지금보다 더 획일화될 것이다. 진정한 잠재력과 다양성을 평가해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갈 좋은 인재를 발굴하려는 순수한 노력마저 중단돼서는 안 된다. 맹목적인 비난보다 현명한 비판이 필요한 이유다.

천경훈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