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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테랑 4년|개혁정책의 후퇴|사립학교 공립화계획등 포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미테탕」대통령은 지난해 7월 헌법의 국민투표조항을 개정하기 위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일이 있다.
현행헌법 11조가 국가기구나 조직의 개편 또는 국제조약의 비준을 위해서만 국민투표를 실시할수 있게 한것을 고쳐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기타 중대문제도 국민투표로 결정할수 있도록 하자는게 그의 주장이었다.
「미테랑」대통령의 이같은 개헌요구는 그동안 거센 여론에 밀려 결말을 짓지못하고 있던 각종 개혁정책을 국민투표로 속결하겠다는 의지로 당시 풀이됐었다.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계획도 결국 불발이 됐지만 사회당정부가 내놓았던 개혁정책 가운데 상당부분이 후퇴 또는 보류돼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사립학교의 공립화 계획. 교육의 평등원칙에 입각, 그동안 사립으로 남아있던 모든 초 중등학교를 공립화하려던 사회당의 계획은 선택의 자유를 주장하는 여론때문에 실현되지 않았다.
사립학교는 대체로 가톨릭교단이 운영하고 있는만큼 교계의 반발이 드셌고 학부모들도 이에 동조, 작년 6월같은 때는 약1백만명의 사립학교 옹호자들이 파리에서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진작 실시된 사회개혁정책이 다시 문제점으로 나타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사형제도 폐지 이후 범죄가 크게 늘어 교도소마다 초만원 상태.
그래서 최근엔 사형제도의 부활론이 머리를 쳐들고 있다.
정부의 미술품 구입예산을 늘리고 대규모 오페라 극장을 신축하는 한편 루브르박물관에서 기성복 패션쇼를 여는등 엘리트 예술에서 대중문화로, 이른바 문화의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사회당 정부의 문화정책은 프람스판 문화혁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나 가시적 외양만 있고 내실이 없다는 일부의 비판을 받고 있다.
국내정치에서는 현재 선거법개정문제가 격렬한 논란의 대상이 되고있다.
사회당정부는 86년 하원선거를 비례대표제로 치르기위해 선거법 개정안을 마련했는데 야당세력인 우파가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자신들의 승리를 견제하려는 악의가 이개정안에 숨어 있다고 반대하고 있다.
81년 대통령선거때「미테랑」과 사회당후보 경쟁까지 벌였고 지금도 좌파안의 가장 인기있는 정치인으로 꼽히고 있는「로카르」전장관은 그동안의 사회당 실책을 비난, 낡은 이념을 버리고 현실에 입각해 좌파의 현대화와 개방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고있다.
자치령 뉴 칼레도니아 문제도 사회당정부를 괴롭히는 고민거리중의 하나다.
84년11월부터 불붙기 시작한 독립파와 독립반대파간의 충돌을 해결하기위해 사회당정부는 군사 외교권만을 보류하고 뉴 칼레도니아를 독립시키는 방안을 마련, 국민투표에 부치려했으나 양쪽이 모두 반발하고 나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있다.
전방위외교의 활성화와 미소데탕트의 중재에 비중을 두었던「미테랑」의 대외정책도 큰평가를 못받고 있다.
그의 잦은 외국나들이는 오히려 무기수출에 목적을 둔 것이라는 빈축을 샀다. 사회당정부는 당초 도덕적 바탕위에서 무기수출을 엄격히 선별, 자제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세계무기시장 점유율은 81년 8.9%에서 혀재 10%이상으로 늘어났다. 일부 유럽국가에선「미테랑」대통령을「사회주의의 가면을 쓴 무기장사꾼」이라고 매도하는 소리도 나왔다.
84년12월 파리주재 북한통상대표부의 총대표부승격으로 긴장이 고조됐던 한불관계는 지난4월「파비우스」수상의 방한과 전두환대통령의 방불초청을 계기로 일단은 정상화됐다.
「미테랑」대통령은 집권중반에 들어서면서부터 당초의 사회주의정책에 많은 수정을 가하고 있다. 이같은 변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실명한다. 『사회당 강령은 내가 집권하기전에 작성된 것이다. 집권을 하고 보니 처음에 계산하지 못했던 점들이 많이 나타났다. 나는 새로운 상황에 알맞는 정책을 펴려고 할 따름이다』<끝>【파리=주원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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