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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보다 실력 우선하는 시대…전문화·특성화로 4차 산업혁명 대비할 것”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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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령인구 감소로 고등교육은 총체적 위기, 전국 137곳 중 100곳 특성화해야 생존 가능… 백화점식 전공 폐지, 편의점식 맞춤 전공 개발, ‘커뮤니티 칼리지’ 평생교육으로 지역과 공생 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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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은 전국 137개 전문대를 대표해 새 도약의 발판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전문 기능인이 각광받는 시대에서 전문대의 경쟁력을 찾을 수 있다고 내다보았다

인류가 새로운 변혁의 시대를 맞고 있다.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의 도도한 물결이 다가오면서 문명사적 대전환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식기반사회가 지식활용과 가치창출이 중요시되는 전문가 시대로 바뀌면서 사회 인력수요 패턴도 급변하고 있다. 하지만 인력양성의 산실인 대학의 변화는 굼뜨다. 시대적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울타리 안에 안주하며 변화를 저어한다. 상황은 심각하다. 당장 2018년부터 고교 졸업자 수가 대입 정원 56만 명보다 적어지고, 2023년에는 고졸자가 40만 명에 그친다. 40만 명 전원이 대학에 진학해도 16만 명을 채울 수 없다는 얘기다.

[연중 연재|문명사적 대전환기, 전문대의 미래를 말한다] 이승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장

실력보다는 간판을 먼저 보는 학벌 중심의 사회 풍토가 여전한 대한민국에서 전문대는 최대 위기다. 4년제 대학이 200개나 돼 자칫 전문대의 입지가 더 좁아질 우려가 있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난 40년간 산업화·근대화를 이끈 540만 명의 역군을 배출한 전문대가 또 다른 도약을 위해 머리띠를 동여매고 있다. 전국 137개 전문대를 대표하는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이하 전문대교협)의 이승우(59·군장대 총장)회장을 만나 어떻게 거센 격랑을 헤쳐나갈지를 들어봤다. 이 회장은 “전문가 시대에 전문가를 만드는 비결은 전문대에 답이 있다”며 “사회가 요구하는 특성화 인력을 전문대만큼 민첩하게 키워낼 수 있는 곳은 없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4월 초 서울 중구 서소문로에 있는 협의회 사무실에서 했다.


산업화·근대화 역군 540만 명 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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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회장은 “직접 배우지 않으면 익히기 어려운 전문 직업기술 위주로 창의성을 가진 인재를 키우는 게 전문대의 역할이고 강점”이라고 말했다.

2014년 9월부터 전문대교협 회장으로 전국의 전문대를 이끌고 계신데 남다른 애정이 있을 것 같습니다.
“군산에 있는 군장대 총장으로만 일하다 회장으로 1년6개월을 활동해보니 책임이 간단치 않습니다. 학령인구 감소와 산업계의 인력수요 변화 등 급변하는 교육·산업 생태계에 대학들이 적극 대처해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간 회장으로서 전문대의 올바른 위치 정립과 이미지 향상을 위해 노력했지만 갈 길이 멀어요. 전체 회원 대학과 소통하며 경쟁력을 키우도록 힘을 모으겠습니다.”

전문대의 어제와 오늘은 어떻습니까? 자체 건강검진을 해보시지요.
“1950년 초급대학으로 시작했는데 ’63년 실업고등전문학교, ’70년에 전문학교가 설립돼 세 가지 유형의 학교가 존재했습니다. 그러다가 ’79년에 고등직업교육의 일원화 차원에서 세 유형의 학교가 전문대학으로 통합됐어요. 현재 137개 대학에 70여만 명이 재학 중입니다. 전문대는 대한민국의 허리 역할을 하는 전문 직업인을 양성하는 교육기관입니다. 고등교육법 15조에도 일반대는 학문과 연구를, 전문대는 직업 교육을 하는 곳으로 나와요. 전문대를 빼놓고 우리나라의 산업화·근대화를 얘기할 수는 없어요. 그만큼 역할이 컸는데 지금은 좀 어렵습니다.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등록금은 동결돼 있고, 정부 재정지원은 일반 대학에만 쏠려 있고… 위기를 돌파해야죠.”

학령인구 감소로 어느 정도 타격이 있습니까? 일반대는 상황이 급박하던데요.
“우리는 이미 정원을 1만6000명 줄였어요. 대비를 많이 한 셈이죠. 방향은 집중화와 특성화입니다. 인덕대의 경우 창업 쪽으로 집중화했는데 주얼리 분야에 여학생들이 몰려요. 군장대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이 안 오는 과는 없앴어요. 예전에는 경영학과와 일어과도 있었는데 학생이 안 오니까 다 없어졌잖아요. 요즘은 호텔리어나 요리사, 용접 전문가를 배출하는 학과가 인기가 높아요. 백화점식 전공을 운영하는 4년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 이후 산업·인력 구조에 큰 변화가 올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됐습니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인데요, 어떻게 대비하고 있습니까?
“우리로선 위기이자 기회인데 교육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어요. 학벌지상주의를 좇아 일반대만 고집하다 전문대로 눈 돌리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잖아요. 일반대 졸업 뒤 전문대로 U턴 입학한 학생이 최근 4년간 5000명이 넘어요. 전문 직업인 시대가 열린 겁니다. 옛날에는 아이들 꿈이 판·검사나 대통령이 많았는데 지금은 명장·만화가·가수 등 다양하잖아요. 개성과 적성을 살려야 경쟁력이 있어요. 전문대가 사회 수요에 맞는 맞춤형 인재, 능력을 갖춘 인재 양성으로 교육의 무게중심을 옮긴 이유입니다.”

학벌 중심 사회가 능력 중심 사회로 바뀌는 것이 기회란 말씀이네요?
“(웃으며) 네. 제가 늘 강조하는 게 ‘명장론’입니다. 명장을 키우는 대학, 명장을 활용하는 대학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용접의 대가, 요리의 대가, 옻칠의 대가, 다 명장 아닙니까? 명장들이 1주일에 한번 와서 학생을 터치해주면 그 학생이 명장이 되고, 명장 학교가 되는 겁니다. 그러려면 시설도, 장비도 좋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전문대 137곳 중 월드클래스칼리지(WCC)급을 지향하는 곳이 21개뿐입니다. 특성화 전문대가 100개는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137개 중 37개가 도태되느냐, 아니죠. 나머지도 그렇게 가야죠.”

그렇군요. 그런데 일반대가 전문대를 많이 베낀다면서요?
“전공 카피가 심해요. 2004년에는 43개 대학이 108개, 2015년에는 108개 대학이 303개 전공을 카피했어요. 대기업이 중소기업이 잘하는 품목을 베끼는 거나 마찬가지죠. 계속 이러면 우리는 위험해요. 일반대는 학문과 연구 중심으로 가야 하는데 전문대 인기 전공을 따라 하려거든 아예 전문대로 전환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일반대는 교원 확보율 규정이 80%이니까 학생이 줄면 인건비 때문에 무너져요. 우리는 기준이 50%니까 산학협력 강사를 많이 활용하면 버틸 수 있어요.”


유니버시티 테크놀로지로 패러다임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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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 얘기를 할 것 없이 전문대만의 영역 구축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요리학과를 예로 들게요. 요리업계에서 호텔 주방이나 요식업계에서 2년 정도 훈련시켜 보내달라는 요청이 옵니다. 요리의 하버드대라고 불리는 미국 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100년 전 세웠는데 100년째 2년제입니다. 프랑스의 르꼬르동블루(Le cordon bleu)도 그렇고요. 2년만 가르치면 충분하고 2년 동안 기초를 다 가르쳐 내보내면 힐튼이나 메리어트 호텔에서 바로 써먹어요. 바로 ‘황금의 2년(Golden two years)’이죠.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특성화·전문화 입니다.”

이 회장은 전문대와 일반대는 경쟁 관계도, 수직 관계도 아닌 형제 관계라고 강조했다. 국고 지원액만 봐도 일반대가 전체의 80%로 전문대는 겨우 10%에 불과한데 아우 것을 탐내지 말라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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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에 전문대의 역할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커리큘럼과 현장학습도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솔직히 우리가 AI를 개발할 수는 없어요. 대신 설계와 응용, 활용방법을 잘 교육시키고 훈련시켜 현장 접목 실력을 높여야 합니다. 모든 대학이 백화점식 전공을 운영하면 앞이 안 보여요. 지역별로, 또는 권역별로 요리가 특성화돼 있으면 요리 쪽으로 가면 됩니다. 공업·기계는 대림대, 자동차는 아주자동차대 같은 식이죠. 자동차 정비와 튜닝 전공을 500명 뽑는데 학생들이 넘쳐나요. 군산간호대는 간호학과만 있지만 병원과 연계해 취업 걱정이 없잖아요. 현장에 AI가 본격 접목되면 전문 기능인, 전문 직업인은 주가가 더 높아집니다. 패러다임을 유니버시티 테크놀로지(University Technology)로 바꿔가야 합니다.”

새로운 개념 같습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벌써 그리 가고 있습니다. 유니버시티와는 다른 개념인데 바로 기술대학을 말하는 겁니다. 2년제나 3년제도 운영하고, 전공에 따라 1년도 하고 4년도 하는 겁니다. 캐나다와 호주도 하고 있어요. 우리도 그쪽으로 가야 합니다. 다시 말해 전문대는 2~3년제, 일반대는 4년제, 이런 기본 틀에 얽매이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앞으로 10년 내에 각종 지식은 물론 경제학·경영학·세무학 같은 강의가 인터넷에 전부 실릴 겁니다. 몇 번 듣고 시험 치면 학점을 딸 수 있는데 뭐 하러 대학을 다녀요. 그렇지만 전문 직업기술은 직접 배우지 않으면 익히기 어렵잖아요. 유니버시티 테크놀로지는 그렇게 이해하면 됩니다.”

선진국들은 어떻게 운영하나요? 배울 점도 많을 텐데.
“정부 책임형입니다.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전문대·기술대 등의 고등직업교육기관 59%가 국·공립입니다. 미국은 78%, 호주는 72%에 달합니다. 정부가 전문대를 고등직업교육 중심 기관으로 육성하려면 사립 중심 체제를 정부 책임형으로 바꿔야 합니다. 정부의 과감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죠.”

그렇지만 정부 재정에 한계가 있어 현실적으론 어려운 일 아닌가요? 다른 방법이 없을까요?
“평생교육중심대학으로 전환하는 게 묘법입니다. 평생교육 기능을 키워서 미국의 커뮤니티 칼리지처럼 하자는 얘기입니다. 지역사회에 학문과 연구 외에 직업·재취업·교양을 담당하는 커뮤니티 칼리지 역할을 전문대가 하면 됩니다. 미국은 인구가 3억 명인데 커뮤니티 칼리지가 4000개 있어요. 우리는 인구가 5000만 명인데 전문대를 커뮤니티 칼리지로 바뀌면 학원이 할 일을 다 흡수할 수 있어요.”


정부 지원과 셀프 혁신으로 시너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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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과 양영유 중앙일보 논설위원(오른쪽)이 대담하고 있다.

전문대를 커뮤니티 칼리지로 바꾸자는 제안이 신선합니다.
“평생교육 기능을 부가하면 전문대와 지역사회 다 같이 살수 있어요. 지역과 산업사회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하자는 거지요. 여행 전문가가 되고 싶은 정년 퇴직자에게 6개월간 관광 가이드 관련 교육을 비학위과정으로 제공하는 게 그 예입니다. 교육부가 권장하고 있고 10곳은 시범대학으로 선정됐어요. 정원을 30% 줄여 일반 학생을 받지 않고 평생교육을 운영하면 됩니다. 지역마다 전문대가 다 있잖아요.”

그럼 비용은 누가 댑니까? 은퇴자들의 호주머니 사정이 뻔한데.
“간단합니다. 고용보험기금에서 재취업프로그램으로 신청을 하면 돈을 주는 형식으로 운영하면 됩니다. 학원이나 직업훈련학교, 폴리텍에서 했는데 규모도 작고 신뢰도도 그렇잖아요. 전문대가 적격입니다.”

정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문제인데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어떻습니까?
“역대 정부 처음으로 전문대 발전을 국정과제로 선택한 것은 고무적입니다. 전문대를 고등단계 직업교육 중심기관으로 육성하겠다는 취지인데 국가직무능력표준(NCS)을 도입한 것은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진한 아쉬움이 있어요. 우선 ‘특성화 전문대 100개교 육성’ 과제의 지원예산이 이전 정부와 비슷해 특별한 변화가 없어요. 전체 전문대가 NCS를 시행 중이지만 예산 지원도 없고요. 그러다 보니 고용노동부 지원을 받는 폴리텍대학을 부러워하는 상황입니다. 게다가 전문대위과정과 수업연한 다양화도 국정과제였는데 진전이 없어요.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산업기술명장대학원’은 논의조차 못해요.”

이 회장은 아쉬워하면서도 이준식 교육부 장관이 3월 24일 전문대 총장들과의 간담회에서 “내년부터 전문대에도 4년제 프라임 사업과 같은 사회맞춤형 교육과정 지원사업을 신설하고, 평생교육 단과대 사업에도 참여할 수 있도록하겠다”고 밝힌 것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이에 대비해 셀프개혁을 통해 체력을 키워야 한다는 논지였다.

전문대의 자발적인 혁신도 절실합니다. 구글 딥마인드의 최고경영자(CEO) 데미스 허사비스처럼 창의·융합형 인재가 필요한 시대 아닙니까?
“1+1은 당연히 2입니다. 하지만 1이 될 수도 있습니다. 둘이 합쳐지면 하나의 덩어리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결혼식장에서 주례 선생님이 ‘이제 둘은 하나가 됐다’며 잘 쓰는 표현이기도 합니다.(웃음) 이게 전문대에 필요한 말이겠지요. 창의성을 가진 유니크한 전문 인재를 키우는 것이 이 전문대의 역할이고 잘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졸업장을 따려고 오는 곳이 아니라 즐겁게 또 치열하게 판을 벌이는 잔치마당에 왔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눈빛부터 다릅니다. 단언컨대 전문대의 강점과 경쟁력은 특성화입니다. 산업 변화에 순발력 있게 대처한 경험을 토대로 백화점 같은 나열식 학과 개설을 추방하고, 사회에 꼭 필요한 편의점식 학과를 개설해 맞춤형 실무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이게 기본이고 핵심입니다.”

전문대교협이 새로 슬로건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문대는 각 분야의 전문가를 키워내는 전문가 대학입니다. 새 슬로건을 ‘전문가를 만드는 힘, 전문대학’으로 정한 이유죠. 이제는 ‘어느 대학 나왔니, 전공이 뭐니?’가 아니라 ‘뭘 잘할 수 있는데?’라고 물어야 합니다. 전문대는 학업 능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지원하는 곳이 아니고 진정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도전하는 교육기관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회장께 전문대란 무엇인가요?
“(웃으며) 효자입니다. 공부를 많이 시켰지만 명절 때만 내려오는 대기업 다니는 큰아들보다 일찍 취업하고 자주 전화하는 작은아들이 집안 대소사를 더 챙기고 어려운 일에 나서지 않습니까. 전문대는 우리 사회에 그런 효자를 키우는 곳입니다.”

글 양영유 논설위원 yangyy@joongang.co.kr 사진 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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