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로 외로움 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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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함께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의 중요성을 요즈음처럼 절감한적이 없다. 특히 어른들은 어린이·노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의 생각·생활을 함께 나누는것이 꼭 필요하다.
지난해8월 마지막 직장이었던 서울 성산국민학교교장직을 물러난후에도 나는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새문안교회 노인학교·마포구의 주부교실….
내나이 이미 65세가 넘었지지만 70∼80세의 할머니·할아버지들과 상담도하고 춤추며 노래하며 어울리다보면 나는 다시 첫교단에 섰던날들로 돌아가는듯 싶은때가 있다.
실제로 내가 경성 여자사범을 졸업하고 교사로 출발한때는 38년 일제치하에서였다. 꽃다운 나이 20에 나는 대전송림국민학교에 부임했다.
처음 5학년 담임을 맡았는데, 반장아이는 홀어머니밑에서 자라며 10여리길을 걸어 통학하는 키가 큰 소녀였다. 그런데 학급분위기가 무언가 껄끄럽고 학급운영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내 의도대로 따라주지 않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잘못한 아이를 차례로 나무라다보니 원인은 반장에게 있었다. 어려운 환경속에 사는 그는 비뚤어져 있었고 모든일에 부정적이었다.
어느날 방과후 나는 그를 교실에 불러앉히고 호되게 잘못을 꾸짖었다. 처음에는 잘못을 나무라기만했는데 그전까지는 누구와도 속사정을 얘기한적이 없었던 그소녀의 어려운 사정을 듣다보니 어느덧 함께 울고있었다.
너무 늦어 둘이 손을잡고 달빛아래 논둑길을 걸어 그의 집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오던길에 나는 참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다. 그후론 선생과 마음을터 헌신적인 반장덕분에 학급일은 일사천리였다.
요즈음 새로운 가르킴의 길에서 나는 자주 그 시절을 생각한다. 특히 할머니·할아버지들과 생활하며 느끼는 것은 그분들에게도 마음을 트고 얘기할 상대가없다는 사실이다.
경제적 가난함보다 더욱 그들에게 괴로운것은 주변사람들의 마음의 가난함이다. 아무도 상대해주려 하지않아 무관심속에 버려졌다는 사실이 그들을 절망케하는것이다. 노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자, 그리하여 그들의 외로움을 덜어주자. 이것이 노인문제의 해결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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