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유계준 <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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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사람을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해서 다른 동물과 구별한다. 그러나 사람은 때때로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행동할 때가 있다.
정신의학 용어에 「반동형성」이란 말이 있다. 그 뜻은 자신의 무의식적인 욕구나 충동등이 작용해 마음과는 정반대되는 언행을 하게 되는 경우다.
예를 들면 상관에 대해 무의식화된 증오심이 깊을때 그상관 앞에서 오히려 공손하고 충실한 부하처럼 행동할수 있게된다. 또 『어머니, 어디 편찮으세요』 라고 걱정스레 묻는 며느리의 마음 속에 『아팠으면 고소하겠다』는 심리작용이 깔려 있을수 있다. 시어머니의 불평을 늘어놓는 며느리에게 『댁의 시어머니 연세는 어떻게 되세요』 라고 물으면 『아직도 정정해서 손자를 업고 동네나들이를 다니신다』 는 칭찬같은 대답속에도 역시 같은 심리가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환자를 대해보면 시골에서 올라온 촌로들은 순박하기가 이루말할 수 없어 질문을 하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지 못해 얼굴을 찡그리고 몸을 비트는 행동을 보인다. 의사들은이런 행동자체에서 그 환자의 진의가 어디 있는가를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런가하면 대도시의 환자들중 일부는 자신의 진의와 감정을 교묘히 감추고 정작하고 싶은 말을 피한다든지, 주위를 맴돌다가 동떨어진 얘기만 늘어놓아 핵심을 읽기 어렵게 만든다.
남편에 대해 쌓인 불만을 말로써 표현하지 못해 생긴 가슴앓이를 『가슴이 계속 이렇게 아픈데, 혹시 암은 아닐까요』 라는등의 얘기로 수십번 가슴사진을 짝어봐야 필름속에 진심이 찍혀 있을리는 없는 것이다.
예부터 말과 행동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고 한다. 자신의 사고나 감정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말과 행동을 사용하게되며 그 결과 말과 행동을 통해 그 사람의 됨됨이를 가늠할수 있게 되는것이다.
그런데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이 말의 참뜻이 왜곡되는 경향을 자주 보게된다. 자신의 사고나 감정을 남에게 전달하기 위해 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숨기고 감추기 위해 교묘히 말을 이용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는것 같다.
웃는 얼굴로 하는 말 속에도 그 사람의 진심이 담겨있지 않다면 그런 말은 아무리 해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안된다. 오히려 그런 말에서 연유하는 또 다른 번민만을 얻을 뿐이다.
서로 마음을 열고 진심을 주고 받는 사회가 정신의학적으로 보아 건강한 사회라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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