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백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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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해는 근대사학 1백년을 기념하는 해다. 그 사실은 우리 사학이 신교육을 주도해 온 역사를 회상케 한다.
1백년전인 1885년 서울에서 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몇개의 근대학교가 문을 열었다
「헨리·아펜젤러」의 「배재학당」과 「호러스·언더우드」의 「언더우드학당」(뒤에 경신학교), 그리고 「스즈랜튼」부인의 「이화학당」과 「호러스·앨런」의 광혜원의학교(후에 연세대학교로 계승)다.
이들은 모두 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된 사학이지만 우리 교육사에 불멸의 금자탑을 쌓아 올린 선구였다.
물론 1883년에 이나라 최초의 신교육기관인 원산학교나 영어학교등이 설립되어 개화의 물결을 타고 들어오는 새로운 학문이 소개되기 시작한 것을 외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이 모두 얼마안가 문을 닫고만데 비해 선교사들이 세운 교육기관들은 한결같이 1세기에 걸친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한 끝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들 선교사학이 이땅에 근대교학을 도입했다는 사실로 해서 우리의 근대화는 태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비록「학교옆의 교회」라는 목표를 갖기는 하였지만 우리사회에 신문화-신교육을 뿌리박는데 선도적 역할을 다했다.
특히 광혜원의학교를 계승한 연세대학교는 근대적 고등교육기관의 효시로서 우리사회 각분야에서 학문적 공헌과 문화적 창조에 크게 이바지했을 뿐더러 7만의 졸업생을 배출하여 나라발전에 기여한 바 크다.
더우기 이들이 우리 사회를 자극함으로써 1894년부터는 관학을 태동케했으며 1905년을 전후해선 민간사학의 설립을 촉진시켰다. 고려대학이 올해 창립 80주년을 맞는것도 그런 민간사학의 태동 결과다.
사학을 중심으로 했던 우리의 신교육은 개화와 민족 보전의 이념을 구현하는데 뚜렷한 역할을 다할수도 있었다.
이들 사학이 지향한 『개화 교육을 통한 구국 운동』이란 명제는 암울한 일제치하의 교육여건 속에서도 역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신법의 교육을 가능케 했다.
사학은 단순히 우리에게 무지미망으로 부터의 탈피만이 아니라 뚜렷한 민족·민주·자유의 이념을 고취했던 것이다.
그로해서 근대사학은 우리의 역사속에서 교육에 대한 국민적인 신뢰를 낳았고 민족 정신의 고취, 정립에 크게 공헌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학 1세기의 빛나는 역사는 오늘 새로운 과제앞에 더한층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1백년동안 사학은 식민통치아래서 민족의 자각과 자주정신을 고취함으로써 국권 회복의 터전을 마련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사학은 제2세기를 맞아 민족통일의 숙원과 21세기를 향한 나라발전의 지향에서 역시 선구가 되지않으면 안되겠기 때문이다.
그런 역할 이외에 우리의 사학들, 특히 고등교육기관들은 우리문화 발전을 선도함으로써앞으로 세계사와 인류발전에 기여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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