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 끼워팔기 유럽서 딱 걸린 구글 … 공정위 “다시 살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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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가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에 대한 ‘자사 제품 끼워넣기’ 문제를 3년 만에 다시 살펴보기로 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20일(현지시간) 구글에 반독점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21일 “EU 집행위의 조사 내용과 연계해 구글에 대한 모니터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OS 79%가 안드로이드
국내 모바일 검색시장선 세번째
최종 혐의 확정 땐 벌금만 8조원

3년 전 무혐의 결론 내렸던 공정위
“EU 절차 검토 뒤 공식 조사 결정”

EU 집행위가 파악한 구글의 혐의는 크게 세 가지다. 구글이 자사의 스마트폰 OS인 안드로이드를 쓰는 제조사에 ▶구글 검색 엔진과 구글 ‘크롬’ 브라우저를 의무적으로 탑재토록 하고▶타사 운영체제 사용을 제한하며▶구글 제품을 미리 탑재하는 대가로 금융 혜택을 줬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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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집행위의 경쟁정책 담당 집행위원인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는 “모바일 인터넷 시장의 경쟁 체제 유지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며 “조사에 따르면 구글의 행위는 모바일 앱 서비스 분야에서 소비자의 선택과 다른 기업의 혁신을 저해하는 반독점법 위반 사항”이라고 밝혔다. 구글 안드로이드 OS관련 불공정 행위는 2011년 국내에서도 제기됐던 문제다. 당시 NHN(현 네이버)과 다음(현 카카오)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구글 검색 엔진이 미리 탑재됐고, 국내 이동통신사에 구글이 경쟁사 검색창을 미리 설치하지 못하도록 강제한 증거가 있다”며 공정위에 신고했다.

공정위는 이 문제를 2년간 조사했지만 2013년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공정위 당국자는 “당시 구글의 모바일 검색 시장점유율이 10% 안팎에 그쳐 공정거래법상 처분 대상이 되는 시장지배적 기업이 아니었다”며 “네이버 위젯 등 타사 검색창도 앱 스토어를 통해 손쉽게 내려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글의 행위가 소비자 편익를 제한하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EU 집행위 조사 과정에서 구글은 한국 공정위의 판단을 근거로 무혐의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나 EU 경쟁당국이 정반대 결론을 내면서 공정위가 제대로 조사해 판단했느냐는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공정위는 1년여 조사 끝에 오라클의 소프트웨어 ‘끼워팔기’ 의혹에 대해서도 지난 13일 무혐의 결정을 했다. 오라클에 대한 공정위 조사 역시 구글 사례와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으로 처음 이뤄진 조사였다.

구글과 경쟁을 하고 있는 국내 인터넷 업계는 공정위가 본격적인 재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익명을 원한 국내 인터넷업체 관계자는 “검색 외에도 유튜브 같은 동영상 앱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 기본 탑재돼 있다”며 “이런 끼워팔기는 소비자 선택권을 저해하고 비슷한 앱 서비스업체와의 경쟁을 제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시장조사기관 코리안클릭의 집계를 보면 올해 3월 기준 구글은 국내 모바일 검색 시장에서 10.3% 시장점유율로 3위를 기록하고 있다. 1위 네이버(78.1%)엔 한참 못 미치지만 2위 다음(11.4%)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나머지 검색 엔진의 시장점유율은 다 합쳐도 0.2%에 불과하다. 구글의 국내 모바일 검색 시장점유율은 공정위가 무혐의 판단을 내린 2013년에 비해 현재 소폭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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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EU 경쟁당국은 모바일 검색 시장점유율이 아닌 다른 기준을 들어 구글의 불공정 혐의를 조사했다. EU 집행위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에 판매된 스마트폰 가운데 78.8%가 안드로이드 OS를 쓰고 있다. 특히 안드로이드를 쓰는 유럽인의 90%가 구글의 ‘플레이 스토어’를 통해 앱을 내려받고 있다.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에 해당할 충분한 점유율을 갖고 있다고 EU 집행위는 판단했다. 현재 한국 모바일 OS 시장에서 구글 안드로이드의 시장점유율은 82% 정도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EU집행위 조사로 새롭게 드러난 반독점 위반 혐의가 있고 모바일 운영체제·검색 시장 구조도 달라진 만큼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며 “모니터링 결과와 시장 상황을 종합해 공식 조사에 착수할 것인지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EU 집행위가 구글에 대해 “혐의가 있다”는 판단을 내렸지만 아직은 기소 단계로 과징금 처분 같은 최종 결정까지는 절차가 남아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혐의가 최종 확정되면 구글은 EU의 반독점법에 따라 매출액의 최대 10%에 해당하는 과징금을 물 수 있다”며 “지난해 구글은 745억 달러(약 84조4000억원) 매출을 올렸다”고 전했다. 구글이 최대 8조원 수준의 벌금을 물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WSJ은 “EU의 과징금은 보통 (매출 10%) 기준에 비해 낮게 책정되는 경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켄트 워커 구글 수석부사장 겸 법무총괄은 “안드로이드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와 개방형 혁신을 기반으로 의미있고 지속 가능한 앱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기여해 왔다”며 “EU 집행위와 대화를 통해 안드로이드 OS가 경쟁에 도움이 되며 소비자들에게도 유익하다는 것을 입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세종=조현숙 기자, 박수련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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