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가습기 살균제 수사는 국민 생존권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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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가습기 살균제의 대표적 제조업체인 옥시레킷벤키저 임원이 어제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이후 첫 소환자다. 146명의 사망자 가운데 103명이 옥시 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회사는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이를 제조해 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사건이 불거지자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연구 보고서를 조작하고 은폐한 의혹도 사고 있다. 검찰은 100여 명의 관계자들을 상대로 수사를 벌여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1994년부터 판매된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는 8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옥시는 2001년 PHMG라는 유해물질이 들어간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었다. 임산부와 영아의 피해 신고가 있었지만 무시했다. 이때를 전후해 다른 업체들도 비슷한 제품을 생산했다. 2011년 4월 임산부와 아이들이 원인 모를 폐질환으로 잇따라 숨지면서 문제의 심각성이 알려졌다. 이후 정부가 확인한 피해자는 530명에 이른다. 피해자 단체는 역학조사가 이뤄지기 전의 사례까지 합치면 피해자는 27만 명가량일 것으로 추정했다. “살균 99.9%! 안심하고 쓰세요”라는 광고 문구가 죽음의 유혹이었다는 사실이 섬찟하게 느껴진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무겁게 여기고 사실 관계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문제가 불거진 이후 5년 만에 특별수사팀을 꾸린 것을 놓고 ‘늑장 수사’를 지적하는 여론이 많다. 때문에 검찰은 국민들이 더 이상 실망하지 않도록 살균제의 주성분인 PHMG와 피해자 사망 사이의 인과 관계를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아야 할 것이다. 수사 대상 업체인 롯데마트와 홈플러스가 뒤늦게 사과를 하고 보상계획을 알린 것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피해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검찰 수사에 대비한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검찰청 앞에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피해자 가족들의 사연은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위험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검찰은 국민의 불안을 씻어 주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수사에 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