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걸식』은 내 작품이다" | 작가 지망생 박인석씨, 김홍신 작품에 시비 | 희귀한 표절 말썽… 법정으로 비화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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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 화가의 체험을 소재로 하여 기성 문인과 소설 지망생이 각각 작품을 썼고 기성 문인이 발표한 작품에 대해 소설 지망생은 『자신이 먼저 그 작품을 썼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자신의 작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문제가 된 작품은 김홍신씨가 지난해 9월부터 「소설 문학」에 연재하여 최근 단행본으로 낸 『걸신』. 자신의 작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소설 지망생 박인석씨(35)다.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김·박 양씨가 작품을 썼으나 복잡한 경로를 통해 박씨의 원고가 김씨에게 넘어가 김씨의 작품이 돼 버린 이번 사건은 우리 문학 사상 초유의 일로 앞으로 법정 시비로까지 번지게 될 듯하다.
앞으로 이 사건은 「소재를 제공한 화가가 얼마만큼 디테일하게 소재를 두 사람에 말했느냐」에 따라, 또 화가와 작품을 쓴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소상히 밝혀져야 풀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의 전모를 알기 위해 두 사람의 주장을 살펴본다. 먼저 박인석씨.
화가 K모씨와 박씨는 몇 년 전부터 아는 사이로 K씨가 한 창녀를 모델로하여 성당의 성모 마리아 상을 그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토대로 하여 창작을 가미, 작품화했다.
박 씨는 완성된 작품을 화가 K씨에게 보여주었는데 K씨는 이것을 타이프로 쳐서 1부는박씨에게 돌려주고 1부는 자기가 가지고 있다가 소설가 김씨에게 『자신이 쓴 것』이라고 말하면서 보여주었다는 것.
김씨는 이 작품의 주제·구성·등장 인물을 거의 그대로 하여 『걸신』으로 발표했다는 것이 박씨의 주장이다.
『김홍신씨는 화가 K씨가 보여준 원고가 나의 작품임을 모른 것은 확실하며 그 원고를 작품으로 보지 않고 소재로 삼아 새로 구성했다는 점도 인정하나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나의 작품을 새로 꾸민 것이 되기 때문에 이 작품은 나에게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박씨의 말이다.
그러나 김씨의 주장은 다르다. 김씨는 자신이 이번 작품집 『걸신』에서 밝힌 것과 같이 화가 K씨와 83년 이전부터 알고 있었으며 그로부터 박씨가 들은 것과 꼭 같은 내용을 듣고 그것을 작품화하려고 해 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화가 K씨가 자신이 써 본 것이라며 타이프 된 원고를 가져왔을 때 그것이 도저히 작품이 될 수 없다고 말해 주고 그것을 단순히 소재로 하여 작품을 만들겠다고 알렸다고 밝혔다.
김씨는 또 화가 K씨가 소재의 내용을 이야기하면서 주인공들의 성격을 나름대로 꾸며 보는 것에 대해 『그렇게 해서는 작품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자신의 구상을 말해 주었다는 것. 화가K씨는 이 구상을 오히려 박씨에게 전달했다는 것까지 김씨는 확인했다고 말한다. 김씨는 화가 K씨에게 소재료로 1백 50만원을 주었다고 밝혔다.
결국 문제는 화가 K씨가 김씨에게 보여준 라이프 된 원고를 자신이 써 본 것이라고 말 한데서 파생되었다.
화가 K씨는 문제가 이렇게 비화될 줄은 몰랐다고 말하고 있다. K씨는 김씨와 82년부터 알고 있었다. 또 박씨와도 그 무렵부터 알게 되어 친한 사이가 되었다. 이 소재를 두 사람에게 다 이야기하였다. 그렇게 이야기한 것은 나의 친구인 한 화가의 생애를 널리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두 소설 속의 주인공 백진용) 한 화가로서 치열한 삶을 살고 갔기 때문에 그의 삶을 알려 우리 화단에 자극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작품은 화가 K씨가 주인공이 되도록 꾸며졌다). K씨는 김씨와도 작품 구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박씨와는 한달 간 절에 들어가서 자기가 구술하면서 작품으로 만드는 것을 도왔다고 밝혔다.
「왜 자신이 써 본 것이라고 말했느냐」는데 대해서는 자신과 박씨가 세밀한 부분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에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말했으며 김씨가 작품으로 만들어 낼 때 원작에 대한 시비가 벌어질 것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고 말했다.
두 작품을 검토한 한 문학평론가는 『두 작품이 주제·구성·디테일의 부분에서 거의 유사하나 여주인공의 성격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말하고 김씨의 작품이 박씨의 작품에 비해 문학적으로 훨씬 잘 형상화되어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박씨의 작품이 단순히 소재에 머문 것은 아니며 문학 작품으로서 갖추어야 할 요소를 그런 대로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이 문제는 당사자간에 해결이 되지 않는 가운데 박씨는 화가 K씨로부터 「박씨가 쓴 작품을 김씨에게 자신이 쓴 것이라고 하여 전달했다」는 내용 증명을 받아 공증을 했고, 김씨는 화가 K씨로부터 「소재에 대해 김씨와 상의했으며 그때 김씨가 말한 구상을 박씨에게도 말한 일이 있다」 는 내용의 글을 받아 두고 있다.
김씨로서는 자칫하면 작가로서의 불명예를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소설 지망생인 박씨로서는 자신의 작품을 잃게 된다는 안타까움 속에 화가 K씨를 가운데 두고 벌어지는 이 사건은 법정에 가더라도 각자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쉽게 해결점이 찾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각자의 양심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임재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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