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쓰기 등 ‘인문치료’로 소년범 재기 도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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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지법에서 소년재판을 담당하는 정현희 판사. [사진 춘천지법]

지난 14일 오후 2시 춘천지법 202호 법정. 소년재판을 담당하는 정현희(33·여) 판사가 판결문을 낭독했다. “○○군에게는 보호관찰 1년, 인문치료 1년간 100시간 수강명령을 내립니다. 대학에서 좋은 교수님에게 수업을 받으며 스스로 되돌아보세요.”

춘천지법, 대학과 협력해 첫 시도
3명에게 1년간 100시간 수강명령
“세상과 소통해 자존감 회복 목표”

앞서 정 판사가 지난해 9월 소년원에서 나온 뒤 또래 친구를 폭행해 불과 7개월 만에 다시 법정에 선 김민철(19·가명)군에게 심경을 물었다. 김군은 “착실하게 살아보려고 했는데 욱하는 마음에 다시 사고를 쳐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춘천지법은 이날 김군을 비롯해 3명에게 인문치료명령이라는 새로운 시도로 소년범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줬다. 어린 시절 책 읽기와 글쓰기에 관심이 있었지만 가정 문제 등으로 학업을 포기한 이들 3명이 강원대 인문대학에서 진행하는 인문치료 과정에 참여하도록 했다.

법원이 대학과 협력해 소년보호사건에 인문치료를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첫 시도다. 이들은 앞으로 강원대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미래 시점의 자서전 쓰기’ 등 표현능력(읽기·쓰기·말하기) 향상을 위한 전문 수업을 받게 된다. 정 판사는 “이번 조치는 아이들이 자신을 변화시키고, 세상과 소통해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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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김익진 교수. [사진 김익진교수]

인문치료는 2013년 10월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김익진(54·불어불문학과·사진) 교수가 처음 시작했다. 법무부 산하 공익단체인 한국소년보호협회 소속 춘천청소년자립생활관에 입소한 소년범들을 대상으로 인문치료를 진행해 소년범들의 재활에 효과를 봤다.

경기도 광주시 동원대 호텔조리학과에 다니는 유모(21)씨는 인문치료를 받고 성적우수 장학생이 된 사례다. 유씨는 일주일에 1~2회씩 1년간 김 교수의 수업을 들었다. 10년 뒤 나의 모습을 주제로 자서전을 썼다. 당시 유씨는 대학에서 호텔조리학을 전공하고 유명 호텔에서 근무하는 모습을 적었고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책도 냈다. 자신의 꿈을 착실히 실천 중인 유씨는 “인문치료가 꿈을 실현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지난해 10월 법관들을 대상으로 인문학강좌를 하면서 이런 성공 사례를 소개했고 결국 춘천지법이 인문치료를 14일부터 도입하게 됐다. 춘천지법과 강원대 인문대학은 18일 공식 업무협약도 맺는다. 법원은 앞으로 연간 발생하는 소년범의 10%인 100여 명이 인문치료를 받도록 할 계획이다.

김익진 교수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갖춰야 할 태도와 자질을 배우고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인식하도록 했다”며 “음악·미술치료까지 접목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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