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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살 KIST, 선수보다 심판이 많아서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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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5호 30면

일러스트 강일구

오는 21일은 과학의 날이다.과학기술처가 설립된 1967년 4월 21일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됐다. 『과학기술 40년사』를 보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제대로 된 과학기술연구소(KIST·현 한국과학기술연구원)를 갖게 되었으니 이를 관리할 과학기술진흥 정부기관이 필요하다”면서 선진국의 과학기술 분야 정부기관의 실태를 조사·보고하라고 지시했다. 그 결과 과학기술처가 설치됐다. 따지고 보면, 과학기술처는 KIST를 잘 관리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올해는 KIST 창립 50주년이고, 내년은 과기처 출범 50주년이 된다.


50년 전, 미국 바텔연구소가 발행한 ‘한국과학기술연구소 설립 및 조직에 관한 조사보고서’에는 KIST 설립의 필요성과 함께 여러 가지 우려와 당부를 제시하고 있는데, 지금 봐도 매우 치밀하다. 예를 들어, 독립성을 갖기 위해서는 이사회를 가진 법인이어야 하며, 국세와 관세를 면제받기 위해서는 특별법 형태로 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우수 연구원을 유치하기 위해 별도의 보수체계를 갖춰야 하지만, 다른 기관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선 리더십을 발휘해 해결하라는 조언도 나온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인력 규모다. 바텔은 KIST 10년차(1976년)에 1000명을 제시하며, 산업성장 속도에 따라 증감하라고 조언했다.


그 후, 50년 동안 KIST는 기능적 측면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었지만 당초 계획과는 많이 달라졌다. ‘한국과학기술연구소육성법’이 제정됐지만 나중에 폐지되고, 연구원 연봉은 국립대학의 3배였다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16개 연구소의 산파(産婆) 역할을 하다 보니 아직도 1000명의 규모가 안 된다. 심지어 교육기능과 통합하여 KAIST가 되었다가 분리되기도 했다. 정책이란 시대 상황에 맞추어 변화되는 것이므로 50년 전의 계획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렵지만, KIST정책에서는 후회스러운 부분이 많다. 이스라엘의 와이즈만연구소나 일본의 이화학연구소 정도로 키우지 못했으니 분명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 때, 우리는 밤에 불이 꺼지지 않는 연구소를 좋아했다. 70~80년대 당시 건강도 돌보지 않고 일하는 분위기 속에서 당연한 주문이다. 필자도 그런 생각이었는데, 선진국 유학을 경험한 후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유학시절, 연구실에서 밤샘을 하려면 매우 까다로운 허가를 받아야 했다. 만약 사고가 나면 보험이 커버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험실에는 2명 이상이 남아야 밤샘 실험이 허락된다. 세미나에서는 노년층 연구원이 맨 앞줄에서 경청하고 활발하게 질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관장이 되려고 경쟁하거나 뒷방 신세라고 나앉는 나이대에 말이다. 선진국 대부분의 연구소는 전문화된 지원 인력(엔지니어·테크니션·행정가)이 연구원 수보다 더 많다. 연구자는 오직 연구에만 집중하며 보직에는 관심도 없다. 이 모든 것이 우리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이러한 경험은 그동안의 정책지식을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한다.


우리가 소홀히 한 것이 무엇인가. 첫째, 연구기관은 규모가 커야 경쟁력과 효율성이 높아진다. 우리는 반대로 기관을 쪼개는 방향으로 갔으니 수백 명의 연구기관이 수십 개 있다. 그래서 KIST도 크지 못했다. 1만 명 이상의 큰 기관 몇 개를 보유하고 있는 선진국과 다른 방향이다.


둘째, 연구기관의 명성이다. 연구기관의 국제화는 리더십과 창의성에 직결된다. 국제무대에서 연구자는 명성과 처우를 보고 이동하며, 명성을 더 우선시 한다. 선진국 기관은 보통 30%를 외국인으로 한다. 우리는 3%도 안 된다. 해외 유망 석학을 교수로 초빙해 국내 대학을 선진화하려 했던 교과부의 국책사업 WCU(World Class University)처럼 돈으로 유치하는 정책은 오래 못 간다. 연구기관이 세계적 명성을 얻으려면 적어도 30년이 소요되는데 우리는 지나치게 자주 기관을 통폐합한 전력이 있다.


셋째, 연구 자율성이다. 영국은 홀데인 원칙(Haldane Principle), 독일은 하르나크 원칙(Harnack Principle)으로 자율성을 부여하는데, 우리는 정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특히 우리 행정가들은 서비스보다 관리 감독을 하려한다. 심지어 연구자들도 보직자가 되면 지시·간섭하려드니, 결국 선수보다 심판이 많아진다. 그래서 우리 연구자는 자신이 연구를 잘하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다. 정부가 잘한다고 하면 잘하는 것이다. 좋은 논문을 써봤자 평가항목이 창업으로 바뀌면 그 연구자는 무능해진다. 연구자 중심의 경영이 필요한데, 우리는 기관장 중심의 경영을 하고 있다. 기관장 평가에 따라 예산이 증감되도록 제도화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


넷째, 사람을 얻는 정책이다. 기술 확보보다 연구원 정예화가 더 중요하다. 즉, 논문·특허는 연구자에게 맡기고 정책은 정책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그래야 자율과 책무, 경쟁과 협력, 개방과 기밀의 양면을 다 잡을 수 있다. 기관장을 ‘누리는 자리’로 보고 재임을 억제하기보다 ‘일하는 자리’로 보고 임기를 늘려야 한다.


그 외에 이익충돌의 관리, 도입 학문의 토착화 등 소홀한 것이 많다. 이렇게 보면, 정책은 더 전문화되어야 한다. 큰 틀은 최대한 유지하며 각론을 정교화하는 단계로 가야 한다. 정책의 걸림돌 중 많은 부분이 인문적 문제이므로 이 부분의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 향후 과학기술 발전을 생각하면, KIST는 이제 인문 분야로도 눈을 돌려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노환진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기초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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