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산다-최중자씨 옷 수선 바느질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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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서울 미아리 길음 시장 골목의 자그마한 옷 수선 가게. 오늘도 최중자씨(50)는 부지런히 재봉틀을 돌린다.
청바지·불라우스 등 갖가지 옷들을 손님들의 몸에 맞게 줄이거나 늘려 고쳐 주는 게 최씨의 일. 올해로 꼭 10년째다.
75년 봄 고향인 경북 영일을 떠나 상경했지만 몸이 약한 남편만을 의지할 수 없어 노량진 삼거리 시장에서 처음으로 이 일에 손을 댔다. 이곳 미아리 길음 시장으로 온 것은 81년 봄. 그동안 그의 손때가 묻은 「재산 1호」 재봉틀은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다.
『청바지나 아이들 옷이 많아요. 비록 5백원 정도 받고 고쳐 주지만 제 손이 간 옷을 손님들이 자랑스럽게 입고 다닐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합니다.』
비록 좁은 시장 길에 「수선」이라는 푯말 하나 붙여 놓고 하는 수선 업이지만 최씨의 자부심은 일류 디자이너 못지 않다.
『요즘 옷 한 벌에 20만원이 넘는 것도 있다지만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은 여전합니다. 검소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더 많아요.』
최씨의 바느질 솜씨는 꼼꼼하고 매끈하다는 손님들의 평.
하루 일감은 평균 15벌 정모. 벌이가 좋은 날 수입은1만원선.
최씨의 가장 큰 재산은 자랑스러운 아들딸이다. 모두 3남2녀를 두었는데 큰딸만 출가했다. 큰아들(27)은 호텔의 요리사로, 둘째아들(25)은 서울대 대학원생 (법학 전공)으로, 세째(23) 는 방송 통신대 학생으로 키웠다. 막내딸도 지난 2월 여고를 졸업, 대학 입시를 준비중이다. 그래서 그는 이곳에서 「장한 어머니」로 불린다.
『어려운 형편에 제대로 뒷바라지도 못 해주는데 아이들이 잘 해내 대견스러워요』 수줍어하는 최씨의 웃음에서 그의 또 다른 별명 「얌전이 아줌마」를 엿볼 수 있다.
『정성들여 고쳐 놓았는데 손님들이 마음에 안 들어 할 때 제일 속상해요』
바람막이도 없는 곳에서 하루종일 바느질하는 일이라서 겨울철이 제일 고생스럽다. 그래서 지난 겨울에는 기관지가 나빠져 며칠 쉬어야 했다. 시력도 많이 떨어져 바느질 꿰기가 쉽지 않다며 큰아들이 마련해 준 돋보기를 꺼내 보인다.
『이제 좀 살 만해졌는데 재작년 5월에 애들 아버지가 돌아가셨죠』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틈틈이 저축한 돈으로 지난 1월 정능에 「17평 짜리 단독주택을 마련, 셋방살이 10년의 설움을 풀었다.
『큰아들 장가들이고, 둘째가 보란 듯이 사법고시에 합격해 준다면…』하며 또 다른 일감을 재봉틀 위에 얹어놓는 그의 거칠어진 손마디가 무척 자랑스럽게 보였다.

<양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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