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인재 혜택 주는 7급 공무원 시험, 대학들 추천·선발 과정 관리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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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생(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 조모(28·여)씨는 요즘 심란하다. 정부서울청사에 침입해 자신의 성적을 합격권으로 조작한 송모(26·구속)씨 사건 때문이다. 공부만 열심히 하면 안정적인 직업을 구할 수 있을 것이란 그의 기대는 누군가가 성적을 조작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조씨는 “합격자가 뒤바뀔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니 책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민간위탁 기관서 시험지 도난도
전문가 “엄격한 관리시스템 필요”

송씨 사건으로 인해 공무원 선발 시험의 허술한 관리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가 지원한 ‘국가직 지역인재 7급 공무원 선발 시험’에 대한 질타가 특히 많다. 대학의 추천 과정에서부터 부정행위가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지역인재 선발 시험은 2005년에 도입됐다. ‘공직사회의 다양성을 높이고 지역인재를 육성한다’는 목적에서다. 지난해까지 총 755명이 이 과정을 통해 공무원이 됐다. 통상 수백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일반적인 공무원 시험보다 경쟁률이 낮다. 올해는 110명 모집에 702명이 추천돼 6.4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 1일 접수가 마감된 서울시 공무원 임용시험 일반행정 7급 경쟁률은 288.3대 1이었다.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낮은 것은 ‘대학의 추천’을 기본 요건으로 삼기 때문이다. 추천을 할 수 있는 곳은 학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학교다. 국내 190여 곳의 대학이 이에 해당하며 입학정원에 따라 4~8명까지 추천할 수 있다. 올해는 128개 대학이 추천했다. 추천 대상의 기본 자격은 각 과의 상위 10% 이내에 해당하는 성적, 토익 700점 이상, 한국사능력검정시험 2급 이상이다. 제주도 소재 A대학에 다니는 송씨는 자신이 속한 과에서 가장 높은 성적을 받았다.

하지만 우수한 ‘스펙’을 갖춘 이가 많아지면서 대학들의 고민이 시작됐다. 변별력 있는 추천자 선발 과정이 필요해졌다. 대학들은 본선 격인 필기 시험에서 보는 공직적격성평가(PSAT)와 동일한 유형의 모의 시험을 민간 업체에 위탁하기 시작했다. A대 취업전략본부 관계자는 “본선 경쟁력이 우수한 사람을 보내야 한다는 차원에서 대다수 대학이 PSAT 모의 시험 성적으로 추천자를 선발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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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이 모의 시험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다는 점이다.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따르면 송씨는 올해 초 시험지를 훔치기 위해 대학이 모의 시험의 진행과 채점을 위탁한 서울 신림동 소재 M고시학원을 찾아냈다. 이후 1월 8일 서울로 올라와 이틀간 학원을 드나들며 문제지 보관장소를 찾았다. 기출문제집을 사며 곳곳을 둘러보다 2층 사무실 데스크 뒤의 강의실에서 종이 뭉치를 발견했다. 송씨는 10일 낮 12시쯤 직원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 문제지 한 부와 답안지 2부를 훔쳤다. 전부 외우지는 못했지만 문제를 미리 풀어 본 덕에 같은 달 23일 치러진 A대 추천자 선발 시험에서 81점으로 1등을 차지했다. 2등은 57점이었다.

이에 따라 지역인재 선발 시험의 1차 관문인 대학의 추천자 선발 과정을 보다 엄격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채용을 담당하는 인사혁신처의 간부는 “대학 자율로 맡기고 있어 어떤 식으로 추천하고 있는지 파악해 놓은 자료는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학의 추천만 받으면 수백대 1의 경쟁 을 피해 갈 수 있는 ‘혜택’이 부여되는 만큼 적절한 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강황선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신력 있는 업체의 전국 단위 시험 결과만 엄격하게 반영하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민제·조한대 기자 letm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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