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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육·해군 주력포에 '짝퉁 미국산 부품' 납품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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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육군과 해군의 주력포(砲)에 원산지를 속인 ‘짝퉁 부품’이 납품된 단서를 잡고 검찰이 수사 중이다.

국내서 만든 볼트·너트 등 역수입
원산지 속인 방산업체 M사 수사

서울중앙지검 방위사업수사부(부장 박찬호)는 국내산 포(砲) 제작용 부품을 미국산이라고 속여 납품한 혐의(사기)로 M사 대표 황모씨를 4일 소환해 조사했다. 검찰은 황씨가 이 같은 수법으로 최근 6~7년 동안 10억원어치 이상의 부품을 팔아온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과 방위사업청 등에 따르면 M사는 육·해군 포의 포신(砲身·포탄이 나가는 관)을 제작하는 대형 방산업체 H사에 볼트·너트·베어링 등 기초 부품을 납품하기로 계약했다. 미국에서 생산돼 인증받은 부품을 수입해 제공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황씨는 국내 업체에 주문해 생산한 부품을 미국으로 보낸 뒤 가짜 인증서와 함께 역수입해 미국산으로 속여 H사에 납품한 단서가 포착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지난달 M사를 압수수색해 이런 정황이 담긴 납품 관련 문건을 확보했다. 또 최근 방위사업청에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한 뒤 M사와 관련된 자료를 가져왔다. 검찰 조사 결과 그가 납품한 부품은 실제 해군의 76㎜ 함포와 육군 K-9자주포 등의 포신 제작에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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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욱 국방안보포럼 수석연구위원은 “볼트·너트 같은 기초 부품의 경우 서류로 원산지 증명을 대체하는 경우가 많아 납품업체들이 이를 악용해 서류를 조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K-9은 국내 지형에 맞게 한국이 독자 개발한 자주포다. 육군 주력포 중 하나로 서북도서와 북한과의 접경지대에 배치돼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는 데 쓰인다.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에도 육군은 K-9자주포로 두 차례에 걸쳐 80여 발을 쏴 북한군에 큰 타격을 줬다. 해군의 76㎜ 함포 역시 북방한계선(NLL) 경계를 하는 유도탄고속함(PKG)에 탑재돼 북한 경비정의 도발에 대응하는 핵심 무기로 활용되고 있다.

이들 포의 포신은 발사 때 발생하는 큰 진동과 압력을 견뎌내야 하기 때문에 작은 부품이라도 성능이 정밀 검증돼야 한다. 서우덕 건국대 방위사업학과 교수는 “무기체계에서는 납땜 하나도 중요한데 볼트·너트 같은 기초 부품의 중요성은 말할 나위가 없다. 실전에서 전투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검증 작업이 철저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월 해군 2함대 소속 유도탄고속함인 ‘황도현함’의 훈련 중 76㎜ 함포가 너트의 풀림 현상 때문에 오작동해 오발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수병 1명이 크게 다쳐 치료를 받다가 6개월 만에 숨졌다.

검찰은 황씨를 상대로 구체적인 납품 경위·규모 등을 조사한 뒤 사기 혐의를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또 황씨가 원산지를 속여 납품한 부품이 들어간 또 다른 무기가 있는지와 비리에 연루된 추가 인물이 있는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M사 관계자는 “회사에서는 그 부분(검찰 수사)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어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서복현·장혁진 기자 sphjtb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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