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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예산 120조로 늘었는데 세입 전망 안 좋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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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9일 정부가 내놓은 내년 예산안 편성 지침과 사회보험 관리 강화 방침은 향후 ‘재정건전성’의 고삐를 바짝 죄겠다는 신호다. 특히 각 부처가 기존 재량지출을 10%씩 줄여 신규 사업에 투자하도록 요구한 것은 사실상의 ‘허리띠 졸라매기’를 시사한 것이란 평가다.

정부, 허리띠 졸라매기 왜
유일호 “재정 확장, 개혁 도움 안 돼”
사각지대 지방·교육재정 관리 강화

박춘섭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은 “일자리와 성장동력 확충 등 돈 들어갈 곳이 많지만 세입 전망은 녹록지 않다”며 “긴축까지 하자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아껴 쓰자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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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보험 재정의 건전화 작업을 본격화하겠다는 선언도 마찬가지다. 재정당국이 예산권을 무기로 그간 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 등 개별 부처들이 도맡던 사회보험 관리와 운용에 보다 깊숙이 개입할 전망이다. 이를 위해 기재부는 연초 예산실에서 복지예산을 다루던 실무부서를 사회예산심의관 아래의 과(課) 단위에서 독립적인 심의관 단위로 격상시켰다. 복지예산 규모가 전체 예산의 3분의 1 수준인 120조원으로 급격히 불어나는 상황에서 재정 부담 역시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조직이 커진 만큼 예전과는 하는 일의 수준도 달라지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유일호 기재부 장관 겸 부총리는 아예 ‘재정 대수술’을 주문하고 있다. 지출 구조조정, 사회보험 개혁과 함께 그간 사각지대에 있던 지방·교육재정 관리 강화도 대상에 포함시켰다. 유 부총리는 조세연구원(조세재정연구원) 원장을 거친 재정학자 출신이다. 재정건전성을 최우선 순위에 놓는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 2012년 복지 논의가 한창이던 때 안종범 현 청와대 경제수석과 함께 쓴 저서 『건강한 복지를 꿈꾼다』에도 그 같은 성향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핵심 키워드는 ‘지속 가능성’을 전제로 한 복지 확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재정의 효율화다. 급격한 고령화 추세에 복지예산의 확대는 불가피한 만큼 전달 체계를 손봐서 누수를 최대한 줄이고 운용도 효율화할 필요가 있다는 논지였다. 또 복지예산 충당을 위해선 사회간접자본(SOC) 등 경제 예산은 점진적 축소가 불가피하고 각종 비과세·감면 역시 줄여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강조하고 나선 건 총선과 이어지는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공약 홍수’에 대비한 선제적 대응이란 해석도 나온다. 정부 입장에선 야당만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29일 새누리당은 경제정책 공약을 통해 ‘3% 이상 성장률 유지’를 목표로 한 적극적 재정·금융정책을 거시정책의 전면에 내세웠다.

이를 위해 한국은행에 ‘한국판 통화완화정책’을 주문하는 한편 정부도 공공 인프라·연구개발(R&D)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날 한 포럼에 참석한 유 부총리는 과감한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 “재정이 전면에 나서야 할 상황은 아직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재정을 확장적으로 가져가면 구조개혁에 도움이 안 되고, 장기적으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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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경제연구원 이준협 연구위원은 “경기가 불안한 상황에서 단기적으로는 재정 완화가 필요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건전성 확보도 중요한 과제”라면서 “이처럼 맞부딪히는 장·단기 목표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가느냐가 재정당국이 풀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세종=조민근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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