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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 오락실 게임의 ‘뿌리’를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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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현·이의재·정의철

아케이드 게임이 놓인 서울의 한 오락실 [사진=중앙포토]

아케이드 게임이 놓인 서울의 한 오락실 [사진=중앙포토]

우리나라 청소년, 특히 남학생들의 안식처는 PC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PC방을 대신하는 장소가 있었다. 격투게임으로 중원을 평정하고픈 무림고수, 생각보다 손가락이 먼저 움직이는 인외경지에 다다른 리듬게임 유저, 화면 가득한 적탄을 요리조리 동체시력만으로 피하던 탄막슈팅게임 초고수가 모이던 곳. 그렇다, 과거 오락문화의 한 획을 그은 오락실 이야기다. 영상을 곁들여 추억여행을 해보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전자오락실은 ‘동전을 넣으면 플레이 가능한 게임기를 갖추어 놓고 수익을 얻는 장소 및 그 업종’을 뜻한다. 지금은 일반인들이 심심하면 들르는 곳으로 취급받지만 사실 비디오 게임 산업을 일으킨 장소이자, 90년대까지도 콘솔 게임기나 PC와는 차원이 다른 그래픽과 성능을 경험할 수 있던 곳이다. 한국의 경우, 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두뇌계발이라는 글자로 유혹하던 로망과 추억의 장소라 할 수 있다.

오락실의 여명기: 1979~1988

'Breakout', 'Pitfall' 등의 명작을 남기며 비디오게임의 효시가 된 '아타리 2600' [사진=The Conmunity - Pop Culture Geek, 위키피디아]

오락실은 1970년대 후반 ‘아타리 브레이크아웃(일명 벽돌 깨기)’이 한국에 등장해 인기를 얻었고, 1979년에 ‘스페이스 인베이더’가 도입되며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대도시의 경우에는 번화가뿐만 아니라 학교 혹은 주택가까지 오락실이 들어섰는데, 당시의 사회적 시선은 곱지 않았던지라 ‘컴퓨터 지능개발실’같은 이름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이 때는 전형적인 아타리 풍의 게임들이 주요 수입원이었다. 이 때의 오락실에도 흑역사는 존재하는데, 90%에 달하는 기판들이 불법 복제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오락실의 전성기: 1988~2002

80년 서울의 한 오락실에서 어린이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80년 서울의 한 오락실에서 어린이들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96년 신촌의 오락실에서 한 남성이 격투게임

96년 신촌의 오락실에서 한 남성이 격투게임 '사무라이 스피리츠'를 플레이하고 있다. [사진=중앙포토]

오락실의 전성기를 이끌기 시작한 것은 ‘버추어파이터’, ‘킹오브파이터즈’, ‘철권’으로 대표되는 격투 게임, 일명 '격겜'이라 할 수 있다. 장점은 요금이 매우 싸다는 것이다. 현재는 300원에서 500원까지 인상되었지만 당시에는 100원, 심지어 50원에 즐길 수 있었다. 가장 큰 인기요인은 멀티플레이가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한국인 고수들이 생겨났고, ‘버추어 파이터’ 버추어파이터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신의욱 선수가 인터뷰에서 "일본 최고수가 한국에 널린 동네 고수만 못하다"는 말을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대전 게임과 함께 오락실을 점령한 장르는 리듬게임이었다. KONAMI에서 출시한 ‘비트매니아와 ‘댄스댄스레볼루션’, 일명 ‘DDR’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에 'EZ2DJ', '펌프 잇 업' 등의 아류작이가 등장해 국산 리듬게임 시장을 구축하였다. 간단한 게임 방식과 독창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수록곡 등으로 기존에 오락실 게임을 즐기지 않던 이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오락실은 기존의 퇴폐적이고 어두운 이미지를 벗어나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장소라는 긍정적 인식을 얻게 된다. 이 당시 EZ2DJ 시리즈는 기체당 1000만원을 호가했음에도 불구하고 10120대나 팔렸다. 당시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DDR은 심지어 남미의 국민 운동으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오락실의 몰락: 2002~2008

사행성 게임

사행성 게임 '바다이야기'를 플레이하는 남성. 2006년 바다이야기는 사행성과 중독성, 게임 내 당첨확률 조작 등의 문제로 처벌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진=중앙포토]

하지만 리듬게임은 2002년부터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건반형 혹은 발판형이라는 변하지 않는 형식, 난이도는 점점 높아지고 난해한 수록곡이 늘어갔다. 결국 특정 매니아만의 리그가 된 이후 오락실은 쇠퇴기에 접어들게 된다. 업주에겐 수익을 남기기 힘든 저렴한 요금과 더불어 PC방의 인기로 2000년 2만5341개였던 오락실은 2001년 1만3540개로 절반이나 줄었으며, 2002년에는 7404개로 1/4 줄어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때 등장한 것이 성인 대상의 사행성 도박 게임 '바다이야기'다. 높은 중독성과 현금 환전이 가능한 바다이야기는 수많은 중독자를 양산하며 경찰의 단속을 받게 되었고, 자연스레 청소년 오락실과 성인 오락실 둘다 규제를 받으며 쑥대밭이 되었다. 바다이야기의 여파가 어찌나 심각했던지, 현재의 뽑기 기계를 사행성이 짙다며 금지시키려 했을 정도였다.

오락실의 재편기: 2008~현재

음악에 맞춰 불이 들어온 버튼을 누르는

음악에 맞춰 불이 들어온 버튼을 누르는 리듬게임 '유비트' [사진=Apetc, 위키피디아]

2000년대 후반, 한국 오락실 업계는 재편기를 맞았다. 다시 문을 여는 오락실이 늘어났다. 악재가 연달아 겹치면서 청소년 오락실이 너무 많이 문을 닫은 바람에 게이머들의 수요보다 오락실 수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2008년 발매된 ‘디제이맥스 테크니카’와 ‘유비트’ 등의 신작 게임이 입고되고, 격투게임의 상징이 된 철권 시리즈 역시 ‘MBC GAME’의 철권 방송 등을 통해 부흥기를 맞이해 오락실 산업이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이 무렵부터 코나미의 'E-Amusement Pass', 펜타비전의 '플래티넘 크루' 등 멤버십 형태로 자신의 기록을 저장하는 기술이 생겼고 기록을 공유하고 경쟁하는 한국인 특유의 심리까지 겹쳐 뜻밖의 호황을 가져왔다. 2016년 현재의 오락실은 코나미의 ‘비나미' 시리즈, 건슈팅 게임 등의 체감형 게임들과 코인 노래방을 주축으로 운영되며, 스틱 게임기들은 거의 대부분 '철권' 중심으로, 그 외의 장르는 구색만 갖춰놓았다. 반면 코나미의 리듬게임 ‘사운드 볼텍스’, ‘유비트’, ‘팝픈뮤직’ 등의 게임이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며 리듬게임 유저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2016년의 오락실 게임, 영상으로 보자

현재 한국은 일본이나 북미지역에서 오락실이 복합 어뮤즈먼트 센터로 변화하는 과정을 따라간다고 봐야겠지만, 아직은 확실한 자본과 광고·이벤트 등을 유지하기 어려운 문제로 대형화되진 못하고 있다. 그러나 ‘펀 잇 바이 세가’ 같은 전문 체인점이 생기고, 화려한 게임의 개발과 도입, 세련된 오락실 운영이라는 측면에서의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오락실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초등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아케이드 게임을 하고, 커플들은 코인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이 마치 벽을 만들듯이 모여 펌프를 구경하는, 추억 속의 그 모습을. 사실 오락실이 추억 속에 오래도록 남은 이유는 게임이 특출나게 재미있다기보단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글=김도현, 영상=이의재·정의철(원광고 3), TONG청소년기자, 청소년사회문제연구소 원광고지부

p.s 영상에 삽입된 '철권'의 버전이 '철권 6 BR'이라고 페이스북 최정우 독자가 알려왔습니다. 혼란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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