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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여야, 위기 인정하고 현실적 대안으로 승부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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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공천 폭풍이 지나가고 후보 등록도 마감돼 4·13 총선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모두 선거대책본부를 꾸리고 총선체제로 전환했다. 하지만 사상 최악의 공천 분탕질로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가 극도로 치솟은 가운데 치러지는 총선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의심스럽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를 둘러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의 수출고가 14개월째 내리막이고 내수는 얼어붙었으며, 청년실업은 사상 최악이다. 더 큰 문제는 위기의 성격이다. 구조적·장기적 침체인데 정부는 단기 처방에 매달려 상황을 악화시켜 왔다. 2%대에 고착된 경제성장률도 개선될 조짐이 없다. 상위 10%가 국민총생산의 근 절반(48%)을 가져가는 양극화의 속도는 가장 빠른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축적된 결과다. 극심한 반발을 각오한 개혁조치를 동원하지 않고선 격차를 줄일 방안이 없다.

그런데도 정치권의 처방은 허황되기 그지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성장률 3%대 회복’ ‘일자리 400만 개 창출’을 떠들고 있다. 실현 가능성도 없는 총선용 공약(空約)일 뿐이다. 여야는 양극화 문제를 놓고도 앞다퉈 ‘기초연금 30만원 인상’ ‘고교 무상교육 단계별 실시’ 같은 공약을 내놓았다. 그러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4년 전에도 같은 공약을 발표했다가 슬그머니 거둬들인 이유는 뭔지에 대해선 입을 다물고 있다.

문제는 정치권 지도자들의 천박한 상황 인식이다. 영도다리에서 바다를 쳐다보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눈동자에 ‘친·비박’ 대신 나라 걱정이 티끌만치라도 보였다면 정부·여당이 이렇게 불신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민주와 국민의당도 마찬가지다. 김종인·문재인·안철수, 전·현직 대표들이 앞다퉈 ‘경제선거’ ‘새정치’를 외치고 있지만 내심에는 의석수, 당권 다툼, 대권 도전 같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경제는 결국 심리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심리가 있어야 동력을 얻는 법이다. 그런 심리는 세대·지역·당파 간에 극한 갈등이 없는 통합된 공동체에서 생겨난다. ‘헬조선’ ‘흙수저’가 일상어가 될 만큼 갈등이 극심한 대한민국에선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여야는 이런 갈등을 해소하는 데 앞장서기보다는 당리당략 차원에서 불에 기름 붓듯 사태를 악화시키기 일쑤였다.

총선을 보름 앞둔 지금이라도 정치권은 변해야 한다. 선거가 끝나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인기 영합의 허황된 공약잔치를 중단해야 한다. 대신 여야 지도부가 만나 대한민국이 직면한 근본 문제가 뭔지 합의하고 큰 틀에서 어떻게 대처해 갈지 공약수를 도출해야 한다.

최악을 향해 달리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정부나 정치권에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걸 국민도 안다. 그렇다면 국민이 감내해야 하는 것에 대해선 여야 모두 솔직하게 유권자들의 이해를 구하고, 나라가 해 줄 수 있는 것을 극대화할 방안을 놓고 정책으로 승부를 겨루는 것이 순리다. 이번 총선은 진지하되 솔직한 정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