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中東평화를 꿈꾸는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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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 작가인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는 전쟁터에서의 끔찍했던 경험을 책으로 펴냈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책은 수십개 언어로 번역됐고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됐다. 책 제목은 '서부전선 이상없다'였다.

이 책을 현재의 중동사태에 대비해 보면 "현재 동부(중동)전선에 이상이 없는가".

실제로 지난 수년간 중동에서는 새로울 것이 없었다. 뉴스는 항상 똑같았다. 전쟁.테러.증오와 죽음 등과 같은 나쁜 뉴스만 전했다. 그러나 이제 현장에서 전해오는 뉴스만을 본다면 나날이 상황이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 몇가지 예를 들어 보자.

▶팔레스타인의 테러단체인 하마스.이슬람 지하드는 이스라엘군에 3개월간의 휴전을 제의했다.▶이스라엘군은 가자 북부와 그리스도의 탄생지인 베들레헴에서 철수했다.▶이스라엘군은 생업을 위해 팔레스타인 주민이 이스라엘지역으로 입국하는 것을 이전보다 쉽게 허용해 주고 있다.▶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와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총리는 직접 접촉해 대화하기 시작했다.

중동에서 전해오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뉴스에 귀기울여 보라.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의 대면을 항상 거부해왔던 샤론 총리는 이제 압바스 총리를 만나 "희망과 번영의 미래를 함께 하자"고 말한다. 압바스 총리는 "과거를 묻어두자"고 호소한다. 무엇보다 두 당사자가 대화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중동사태가 어떻게 이토록 놀랄 만하게 반전됐을까.

첫째, 중동을 둘러싼 환경이 개선됐다. 이라크전쟁은 아랍세계에서 사담 후세인과 가장 긴밀했던 팔레스타인 강경주의자들을 제거했다. 이제 이스라엘은 이전보다 훨씬 안도하고 있다.

둘째,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는 점이다. 미국은 팔레스타인 저항분자의 보호막 역할을 했던 시리아와 가자지구에서 가장 활발한 테러활동을 벌이고 있는 하마스에 간접지원을 해왔던 사우디아라비아를 지속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셋째, 서안과 가자지구를 부분적으로 재점령한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이슬람 지하드와 파타운동의 군사조직인 알아크사 여단에 막대한 타격을 가했다.

넷째,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부추기면서 한편으로는 협상을 추구했던 아라파트의 양면작전이 두드러지게 약화됐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아라파트를 라말라 지역에 사실상 연금했으며 미국은 아라파트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측에 협상하라는 강력하고 지속적인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중동의 평화협상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샤론과 압바스 총리를 비롯한 아랍 지도자를 만났다. 이들과의 만남에서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이제 중동 평화협상을 주도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변화가 평화를 갑자기 이뤄줄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는 이스라엘을 무너뜨리겠다는 목적을 결코 포기한 적이 없다. 그러나 끝없는 상호 폭력의 사슬에 갇혀버린 이스라엘과 아랍의 악순환이 선순환으로 바뀔 확률이 적어도 50%는 된다.

팔레스타인의 압바스 총리가 이스라엘로부터 상당한 양보를 얻어내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이는 팔레스타인 내에서의 그의 입지를 강화해 줄 것이고 테러조직의 통제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팔레스타인 내에서 일자리를 창출해낼 수 있는 이스라엘과의 경제적인 교류가 생긴다고 상상해 보라. 그렇게 되면 테러조직에 휩쓸릴 수밖에 다른 길이 없었던 팔레스타인의 젊은이들에게도 평화적인 일에 종사할 기회가 생겨날 것이다.

이러한 일은 적어도 미국이 이라크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더욱 실현성이 커진 꿈이다. 그러나 이 꿈이 다시 악몽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텔아비브나 예루살렘의 인파로 붐비는 곳에서 몇개의 자폭폭탄이 터진다면 말이다.

요제프 요페 독일 디 차이트 발행인

정리=유권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