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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쇼크 후 과학기술정책 성공하려면 …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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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호 30면

일러스트 강일구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전(‘이알대전’이라 하자)은 생각해 볼수록 의미가 크다. 기계가 인간 최고수에게 도전한 사건이니 인류사에 기록될 만하다. 그 후, 우리 정부는 인공지능(AI)연구소를 설치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과학기술 컨트롤 타워를 개편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발표했다. 다른 현실적 이슈에 가려져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던 과학기술인에게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렇게 한 사건을 계기로 연구소가 설립되고 컨트롤 타워가 변경된다는 사실에서 우리의 과학기술정책이 다소 가볍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과학기술정책은 선진국의 동향과 우리의 역량을 주의 깊게 검토하여 매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부처별로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하여 추진하는 형식을 갖추고 있는데, 이러한 계획 속에 인공지능의 개발이 없었던가. 이알대전에서 우리가 궁금했던 것은 승부일 뿐, 인공지능의 무서운 발전 속도는 전문가들 사이에 이미 알려진 얘기다. 즉 이알대전이 일반인들에게는 획기적 사건이 되지만, 전문가들에게는 올해냐 내년이냐의 시간문제로 다가왔던 내용이다. 향후 10년 이내 인공지능이 500만개의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라는 예측은 일반인들에게는 충격이지만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으로 받아들인다. 이번 정부 발표를 보고, 우리 과학기술정책이 전문가 집단에서 결정되지 못하고 비전문가들에 의해 결정되는 모습으로 비쳐지면서 가볍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이번 정책이 효과적일지 우려된다. 인공지능 개발을 기업형 연구소 설립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을까? 각자 전략이 다른 기업들이 서로 협력할 수 있을까? 공통핵심기술을 개발한다면 기업들이 참여하려 할까? 기업이 공공재에 대한 투자를 꺼리는 현상은 이미 이론으로 나와 있다. 80년대 중반, 반도체 개발을 위해 대기업들의 컨소시엄을 운영할 당시에도 비슷한 어려움을 경험하지 않았던가. 기업형 연구소를 민간 주도로 설립한다면서 정부가 발표함으로써 정부가 주도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과학기술전략회의를 설치하고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체계가 과연 좋을까? 대통령이 직접 챙긴다면 즉각적 효과는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기초연구와 산업기술 간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평가방식을 지적하는 걸 보고 역시 이공계 대통령은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만약 직접 챙기지 않는 대통령이 후임으로 선출되면 정책의 우선순위가 저 뒤로 밀리고 과학기술정책이 아예 작동되지 않게될 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장기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할 과학기술정책이 지속성 있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관심을 받지 않고도 잘 굴러가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우리 정부의 정책은 교육이나 과학기술에서조차 힘의 우선순위로 접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뜰한 가정에서는 미래를 위해 일정 액수를 뚝 떼어 저축한다. 일본도 오래 전부터 이렇게 해왔다. 즉, 일본의 ‘제4차 과학기술기본계획’을 보면, “일본은 연구개발 투자를 증가시키기 위해 목표액수(target amounts)를 기본계획에 설정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일본은 과학기술을 국가의 생명선(lifeline of Japan)이라고 본다”는 표현도 있다. 우리에게 국가의 생명선은 무엇인가.


지난 50년간의 정책 경험을 보면, 제도는 항상 개선(改善)과 개악(改惡)의 양면을 가진다. 새로운 제도가 발전에 유리할지 폐단이 될지는 사용자, 즉 공무원의 능력과 자세에 달린 문제였다. 그동안 부처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업무영역 다툼이 과학기술정책에 얼마나 많은 혼선을 주었던가. 재원 배분이 주먹구구식 나눠먹기로 비친 이유는 일관성의 상실 때문일 것이다. 특히 과학기술을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 보고, 정부가 끌고 가면 따라가야 하는 객체로 간주하는 관점이 과학기술 발전을 간섭하고 저해하는 이유가 된다면 지나친 해석인가.


이제 과학기술은 스스로 발전하도록 고삐를 풀어주어야 할 때라고 본다. 과학기술이 폭넓은 스펙트럼에서 다양하게 성장하도록 ‘자연스런 생태계’를 구축하는 정책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토대 위에서 경제발전(신제품·창업), 사회안전(질병·안전), 국제기여(환경·기후) 문제를 유인성 프로그램으로 해결해야지, 밀어붙이면 생태계가 망가진다.


정책에도 평상심이 필요하다. 과학기술정책이 대중적 사건이나 정치적 입장에 동요돼서는 안 된다. 가끔 대중적 이슈가 발생하면, 전문적 현황을 국민에게 소개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 최근 과학기술계에서는 창의성을 높일 수 있도록 자율성을 달라는 목소리가 크다. 그러려면, 정부가 결정하는 많은 부분을 연구자 집단에 위임해야 한다. 또한 과학기술계는 윤리적 수준을 높여 사회적 신뢰를 얻도록 화답해야 한다. 이것이 정확한 정책 방향이다. 창의성은 자율성에서 나오고, 자율은 신뢰에서 나오며, 신뢰는 윤리에서 나오는 법이다. 우리는 무한한 창의성이 잠재되어 있어 언젠가는 하늘을 찌르고 올라갈 것이다. 우리는 한글을 만든 민족임을 잊지 말자. 인공지능, 그것은 바둑 잘 두는 민족, 우리에게 참 잘 맞는 연구 영역이 될 것이다.


노환진대구경북과학기술원?기초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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