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없는 오지 섬마을서 순회 법정…비금·하의·안좌도에 판사가 갑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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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전남 신안의 섬 주민들은 사소한 소송이 붙더라도 목포까지 나가야 재판을 받을 수 있다. 흑산도나 홍도에서 목포여객터미널까지의 직선거리는 90~110㎞. 쾌속선을 타더라도 꼬박 2시간 넘게 배를 타야 뭍에 도착한다. 섬 내부와 육지에서 차를 갈아타는 시간까지 합치면 최소 5시간이 넘게 걸린다.

신안군, 광주지법 목포지원과 협력
내달부터 10개 면의 9건 재판 진행
조정위원회 구성, 분쟁 해결 돕기로

아침 첫 배를 타고 나와 목포시 옥암동에 있는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에 도착해도 안심을 할 순 없다. 하루 3~4차례 운항하는 쾌속선이 끊기기 전까지 재판이 끝나지 않으면 꼼짝없이 발이 묶이기 때문이다. 재판이 오전에 있는 경우는 아예 재판 전날 목포로 나와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 흑산도 예리1구 이장 안승호(53)씨는 “뭍에서 일을 보려면 최소 이틀 동안 생업을 접어야하는 섬 사람들의 입장에선 소송 자체가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재판으로 인해 불편을 겪고 있는 섬 지역 주민들을 위해 법원과 지자체가 손을 잡았다. 광주지법 목포지원과 신안군은 “다음달부터 신안지역 3개 주요 섬에서 ‘섬소리 순회 법정’을 연다”고 24일 밝혔다. 순회법정이 열리는 섬은 비금도·하의도·안좌도다. 비금도는 구글의 알파고와 맞붙은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의 고향이다.

목포지원은 3개 섬에 설치된 면사무소에서 총 10개 면 주민들에 대한 재판을 연다. 비금면사무소에서 열리는 ‘비금법정’에서는 비금·도초·흑산면 주민들이, 하의면사무소에서 열리는 ‘하의법정’에서는 하의·신의면 주민들이 재판을 받는다.

안좌면사무소에 여는 ‘안좌법정’에서는 자은·안좌·팔금·암태·장산면 주민들이 당사자나 증인으로 출석해 재판을 받게 된다. 순회 재판부는 판사와 참여관·실무관·조정위원 등 5명 안팎으로 구성된다. 신안군은 재판이 열릴 경우 기존 면사무소에 원고석과 피고석·증인석 등 간이 법정을 설치한다.

순회 법정에서는 민사소액·민사단독·가사단독 등 형사 사건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건을 다룬다. 광주지법 본원이 2013년 시작한 ‘삶터 법정’이 주로 파산사건에 한정됐던 것에 비해 재판 대상이 크게 확대된 것이다. 광주지법은 섬이나 산간지역 주민들의 재판 편의를 돕기 위해 삶터 법정을 운영해 왔다.

신안군은 전국 82개 군(郡)지역 가운데 군 법원이 없는 6개 지역 중 한 곳이다. 지난 2월 부임한 장용기 목포지원장이 순회 법정이라는 카드를 꺼낸 것도 이 때문이다. 장 지원장은 과거 목포지원에 근무한 경험을 살려 신안군과 순회 법정 설치를 추진해 왔다. 목포지원은 법원 직원과 법률 전문가, 섬 주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조정위원회도 구성해 각종 분쟁을 신속하게 해결키로 했다.

목포지원과 신안군은 순회 법정을 통해 섬 주민들이 목포지원까지 가야 하는 불편과 시간·경제적 부담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목포지원에서는 신안 섬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9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다.

황광연 신안군 기획홍보실장은 “순회법정 대상인 10개 섬 대부분이 서로 다리로 연결돼 있거나 배로 1시간 이내 거리여서 주민들이 생업에 지장을 받지 않고 재판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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