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 레터] 칼보다 강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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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를 움직이는 영상으로 기억하지는 않습니다. 결정적 순간은 언제나 정지된 사진으로 기억에 저장됩니다. 벌거벗은 채 울먹이며 화염 밖으로 걸어 나오는 소녀 사진은 베트남전의 상징으로 남아있습니다.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세 살배기 쿠르디의 사진은 유럽의 난민 정책을 단번에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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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브뤼셀 자벤템 공항에서 테러 직후 희생자의 모습. [케테반 카르다바, AP=뉴시스]

어제 벨기에 브뤼셀에서 일어난 테러도 사진을 남겼습니다. 이른바 ‘노란 자켓 여성’ 사진입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세계 유수의 신문이 이 사진을 1면 머리에 올렸습니다. 찢겨 나간 옷과 한 짝밖에 남지 않은 신발, 피로 얼룩진 얼굴, 망연자실한 표정…. 테러의 잔혹함이 사진에 모두 담겼습니다. 사진은 조지아 공영방송의 특파원 케테반 카르다바가 찍었습니다. 폭발이 있은 후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다리부터 만졌다고 합니다. 안도는 잠깐, 그녀는 직업적 책무를 떠올렸습니다. “이 현장에 있는 기자는 나뿐이다. 현장을 찍어서 알려야 한다.”

인류의 위대함은 여기서 나옵니다. 목숨을 챙겨야 하는 본능적 순간이 지나간 후 사회적 책무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인간 말입니다. 이세돌에게 보낸 찬사의 대부분은 1승이 아니라 지고 난 이후를 향한 것입니다. 밤을 새며 복기한 이세돌의 고뇌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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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다음날에도 우리는 세계적 연대를 경험합니다. ‘#나는 브리셀입니다’라는 해시태그가 SNS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칼보다 강한 연대입니다. 이 잔혹한 테러에도 세계가 다시 힘을 내는 이유입니다.

국내에선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8일 만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유 의원의 모습은 20대 총선을 상징하는 사진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가 진정 강한지는 4월 13일 밤 결말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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