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비급여 청구 1위
대치동 의원 환자로 가보니
보험사 “사실상 심사 어렵다”
손해율 껑충, 어느새 124%
서울 대치동 A의원의 상담부장은 지난 21일 환자로 찾아간 기자에게 이렇게 신신당부했다. ‘전기치료(20분)+도수치료(20분)+운동치료(50분)’의 체형 교정 패키지(회당 15만4500원)가 실손보험으로 처리된다는 안내를 한 직후였다. 그는 “30회를 선납하면 320만원으로 할인해 준다”며 “오래전 가입한 실손보험이라면 자기부담금은 2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날 X선 촬영과 촉진을 통해 A의원 원장이 내린 진단은 일자목과 골반 틀어짐. 원장과 상담부장 모두 30회짜리 패키지를 추천했지만 “30회 하면 얼마나 나아지느냐”는 질문엔 “조금은 개선될 것”이란 모호한 답을 내놨다. 피트니스센터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운동치료실에선 30~40대 환자 5명이 운동처방사의 지도를 받으며 운동기구를 이용하고 있었다. 병원 한쪽엔 백옥주사·신데렐라주사 등 피부 미용시술을 홍보하는 큼직한 입간판이 보였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보험개발원 통계에 따르면 A의원은 실손보험금을 청구한 전국 2만4801개 병·의원 중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의료비 비중이 가장 높은 의료기관(2013년 기준 97.5%)이다. 전체 평균(68%)을 크게 웃돈다. 사실상 비급여 항목의 진료만 취급하는 셈이다. A의원을 포함한 비급여 비중 상위 10개 병·의원은 모두 척추관절 전문이었다. 이 중 의원급은 손을 이용, 물리적인 힘을 가해 증상을 완화해 준다는 도수치료 전문이다. 병원급은 고주파열치료술 같은 시술을 하면서 도수치료를 병행한다.
과거 국민건강보험의 요양급여 항목(2005년 수가 8740원)이었던 도수치료는 2006년 비급여로 바뀌면서 의료기관이 마음대로 가격을 정하게 됐다. 의사가 직접 해야 한다는 조건도 완화돼 물리치료사가 할 수 있게 됐다. 이후 가격은 껑충 뛰었다. 도수치료에 필라테스나 피부 미용주사 등을 패키지로 묶어 회당 15만원 정도 받는다.
한 생명보험사의 심사담당자는 “3~4년 전부터 도수치료 전문병원이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의료계의 블루오션”이라고 전했다. 사실상 비만 관리나 체형 교정, 피부 미용 목적이지만 도수치료를 명목으로 실손보험을 청구한다. 임희선 보험개발원 수석담당역은 “보험사로선 확인하는 진료비 영수증엔 진료 항목과 총금액만 나와 심사가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도수치료를 포함한 비급여 항목의 과잉 진료는 가입자 3000만 명의 ‘국민보험’ 실손보험을 휘청거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실손보험의 손해율(받은 보험료 대비 내준 보험금 비율)은 해마다 높아져 2015년 상반기 124.2%였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실손보험 가입자에게 전가됐다. 지난 1월 각 보험사는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실손보험료를 20%가량 인상했다.
서인석 대한의사협회 보험이사는 “도수치료를 악용하는 의사와 의료기관도 문제지만 도덕적 해이에 빠져 이를 과용하는 환자도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보험사는 모럴해저드를 부추기는 실손보험 상품의 설계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승연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의료기관마다 제각각인 비급여 진료수가를 통제하는 근본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급여=의료비 중 건강보험공단이 요양급여를 지급하지 않고 환자 본인이 부담하는 항목. 진료비는 병원이 마음대로 정한다.
◆도수(徒手)치료=맨손으로 하는 치료. 기계를 이용하지 않고 손으로 근육이나 뼈를 만져 줘 통증을 완화시킨다. 카이로프랙틱으로도 불린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