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물림하는 가난] 소득이 집세를 못 따라가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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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집이 없어 만날 집을 옮겨다녀야 해요. 그래서 엄마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아버지랑 많이 싸우시고 저희를 많이 때려요. 그래서 저도 형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요. 제발 집 좀 주세요."

초등학교 5학년인 승복이의 바람은 '우리집'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지만 빈곤층의 내집 마련은 잡을 수 없는 꿈으로 보인다.

이번 조사에서 극빈층 10명 중 8명은 '내집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응답자의 98.6%는 전세나 월세, 임대아파트 등에서 살고 있었다.

이들 중 절반 정도는 14세 때 부모 소유의 집에서 살았다고 했다. 한때 자기 명의의 집을 가진(8.9%)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사업 실패(47.2%)와 사기.빚보증(13.9%), 가족 병 수발(11.1%), 실직(8.3%) 등으로 집을 날렸다.

문제는 치솟는 임대료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47.1%가 빈곤탈출을 막는 주범으로 주거비를 꼽았다. 지난 1월 LG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저소득층(하위 20%)의 주거비 비중은 22.7%로 고소득층(상위 20%)가구의 5.4%보다 17%포인트나 높았다.

소득은 오히려 17.3 줄어드는데 임대료가 올라가다 보니 극빈층은 형편에 맞춰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으로 옮기거나 빚을 내 현상유지를 할 수밖에 없다.

원금과 이자를 갚기도 전에 임대료가 올라가면 빚더미에 올라 앉는 것은 시간문제다. 결국 늘어난 빚을 안고 지하 셋방과 교외지역, 비닐하우스촌까지 흘러 들어간다.

재개발이나 주거환경 개선도 빈곤층을 더 나쁜 주거환경으로, 가난으로 내몬다. '달동네' 등으로 지칭되는 저소득층 거주지역이 개발지역으로 지정되면 투기꾼들이 집값과 땅값을 올려놓는다.

세입자들은 쫓겨나고 입주권을 받은 저소득층도 입주에 필요한 차액을 감당하지 못해 이를 전매한 뒤 세입자로 전락한다. 그 결과 극빈층이 가질 수 있는 집은 비닐하우스 정도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비닐하우스촌 거주자 1백75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비닐하우스촌에 사는 이유로 저렴한 집값과 임대료(78.5%)가 꼽혔다. 응답자의 79.5%는 비닐하우스촌에 자기 집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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