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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력 상실하며 가족까지 해체…사회서 단절된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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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국의 이상적인 중년 남성상은 경제적 능력을 갖춘 ‘가장’의 모습입니다.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사회로부터도, 가족으로부터도 고립되는 거죠.”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치러 주는 비영리단체 ‘나눔과 나눔’의 박진옥 사무국장은 중년 남성의 무연고 사망 원인을 ‘경제력의 부재’와 ‘가족·사회로부터의 고립’에서 찾았다. 실제로 40·50대는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해야 할 나이다. 하지만 가족의 기대만큼 돈을 벌지 못하거나 가족에게 금전적 피해를 주는 등의 이유로 가족이 해체되기도 한다. 종로쪽방상담소 이화순 소장은 17일 “경제적 이유 등으로 집을 나온 중년 남성들은 자기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해 가족을 그리워하면서도 먼저 연락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4050 고독사 급증 왜

특히 가족과 인연이 끊긴 중년 남성들이 재기하기는 쉽지 않다. 유품정리업체 스위퍼스의 길해용 대표는 “40·50대 무연고 사망자들의 집에서는 텅 빈 냉장고와 술병·병원진단서·복권 등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고 말했다.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술에 의지하다가 각종 질병에 시달리며 죽어 간다는 것이다.

무연고자들은 주변 이웃들과도 단절된 채 살아간다. 시신이 부패해 악취가 나거나 구더기가 기어 나오기 시작할 때가 돼서야 신고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중년 남성들의 고독사가 늘어나는 이유에 대해 노숙인 인권단체 ‘홈리스행동’의 박사라(32·여) 활동가는 “중년 남성들이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박씨는 “중년 남성들은 노년층처럼 기초연금을 받을 수 없다”며 “주변 시선을 의식해 스스로 복지지원 신청을 꺼리는 분위기도 있다”고 말했다.

몸이 아플 때 노숙인 의료급여제도 등의 지원을 받기도 쉽지 않다. 박씨는 “노숙을 해도 기간이 3개월 이상 돼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갈 수 있는 병원도 한정돼 있고 기초수급자로 지정돼도 병원을 자주 가면 ‘의료쇼핑’을 한다는 눈총을 받는다”고 말했다.

무연고 사망은 두 가지로 분류된다. 가족을 찾지 못하는 경우와 가족들이 시신 수습을 포기하는 경우다. 누군가는 죽어서도 가족에게 버림을 받는다. 유품정리업체 바이오해저드 김새별 대표는 “가족이 없는 사람은 있을 수 없다. 단지 버림받은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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