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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불확실성 시대…“매매가보다 비싸도 전세 살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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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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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전세 만기를 앞둔 주부 박모(38·서울 금호동)씨는 지난 주말 인근 성수동에서 전용면적 84㎡형 아파트 시세를 알아봤다. 평소 눈여겨보던 아파트 전세의 최근 계약금액은 4억5000만원. 한데 매매 실거래가는 4억3800만원에 불과했다. 전세 들어갈 돈이면 집을 사고도 남는다는 얘기다. 박씨는 “집값보다 조금 비싸더라도 전세로 계약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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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전세보증금이 집값보다 비싼 단지가 확산되고 있다. 전셋값이 매매가에 근접하면 전세수요가 매매로 돌아선다는 업계 통념이 깨진 셈이다. 16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월곡두산위브 전용 59㎡형은 지난달 3억6000만원에 전세 거래됐다. 이 단지의 같은 크기 아파트는 같은 달 3억5500만원에 팔렸다.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 삼성래미안 55㎡형도 최근 거래된 전세물건이 최고 3억3000만원으로 같은 면적 매매가격(3억2000만원)보다 높았다. 하월곡동 믿음공인 현정연 사장은 “주택시장이 주춤해진 데 반해 전세는 품귀현상을 빚다 보니 로열층 전셋값이 비로열층 매매가격을 넘어서기도 한다”고 말했다.

서울 하월곡동 59㎡형 아파트
매매값은 3억5500만원인데
전세 3억6000만원에 계약 체결

전셋값이 집값을 웃도는 건수도 증가하는 추세다. 의왕시 포일동 D공인 관계자는 “인근 인덕원대우2차 84㎡형의 경우 올 들어 전세가 집값보다 비싸게 거래된 건수가 2건 나왔다”며 “매매 물건이 비교적 싼 저층이었지만 지난해만 해도 아예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이런 움직임은 서울 성동·성북구, 경기도에서는 오산·의왕시 등에서 많은 편이다. 모두 집값 대비 전셋값 비율(전세가율)이 80% 안팎으로 높은 지역이다. 주택별로는 집값이 비교적 싸고 소형 아파트인 경우가 많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전문위원은 “집값 상승 여력이 제한적인 낡은 집이면서 교통이 편리해 전세수요가 많은 곳이 대부분”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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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셋값이 집값 못지않은데도 전세를 택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집값 상승 기대감이 크지 않아서다. 아파트값 상승세는 지난달 기준 1년8개월 만에 꺾였다. 성수동 가나안공인 김창호 사장은 “집값이 오를 것 같으면 수요자들이 매매로 돌아설 텐데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대출 규제도 이런 추세를 부추기고 있다. 집을 살 땐 대출심사 강화로 원리금을 같이 갚아야 하지만 전세는 그렇지 않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리서치팀장은 “똑같이 대출을 받아도 전세는 이자만 내면 되니 세입자 부담이 크게 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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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금 보장의 매력도 한몫한다. 전세는 몇 년을 살아도 만기가 되면 최소한 전세보증금 원금은 돌려받는다. 같은 금액이라면 취득세 등 각종 세금을 내야 하는 매매보다 전세가 주거비용이 적게 드는 셈이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셋값과 매매가의 역전현상은 일반적이지 않은 국지적 사례”라면서도 “주택 구매심리가 계속 위축된다면 집값 움직임도 정체돼 이런 단지가 늘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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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셋값이 집값보다 높으면 나중에 집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보증금 일부를 떼일 수 있다. ‘깡통전세’ 우려를 덜기 위해선 전세보험에 가입하는 게 좋다. 세입자가 전셋값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전액 또는 일부를 보상해 주는 상품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 따르면 지난 1~2월 전세금 반환보증보험 가입건수는 2278건으로 전년 동기보다 89% 급증했다. 전세를 고집하기보다 준전세(보증금이 많고 월세가 적은 것)를 택하는 게 낫다는 의견도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보증금을 조금 낮추고 나머지는 월세로 내는 게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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