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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톡] “백남준 비디오아트, 삼성전자 TV 후원 받게된 계기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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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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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미국 뉴욕의 백남준 스튜디오에서 백남준(아래)과 함께 한 도형태 부사장. [사진 갤러리 현대]

‘비디오아트의 개척자’ 백남준(1932~2006)은 의외로 우리에게 낯설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일찌감치 일본, 독일, 미국 등지로 자유로운 예술 형식을 찾아 떠돈 유목민이었기에 그 광활한 정신의 파노라마를 알아챌 겨를이 없었다.

‘갤러리 현대’ 도형태 부사장
어머니와 백남준 인연 등 소개
다음 달 3일까지 회고전 열어

그의 10주기를 맞아 다음 달 3일까지 서울 삼청로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고 있는 ‘백남준, 서울에서’전은 이런 낯섦을 바탕에 깐 제목이다. 15일 발간된 전시도록은 백남준이 고향을 떠난 지 30여 년 만에 귀국하게 된 사연을 밝히고 있어 흥미롭다.

도형태(47) 갤러리 현대 부사장이 쓴 글은 1983년 프랑스 파리로 거슬러 올라간다. ‘물방울 작가’로 이름난 김창열(87) 화가의 집을 찾은 박명자(73) 당시 현대화랑 대표는 저녁 초대를 받아온 백남준을 처음 만난다. 한국에서 간 정기용 원화랑 대표, 김창열씨 내외 등과 환담을 나누던 백남준은 식사가 끝날 무렵 피아노 앞에 앉았다고 한다. 건반을 쓸어보던 그는 ‘봉선화’ ‘가고파’ 등 한국 가곡을 악보 없이 쳤고, 박 대표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을 음률로 호소하는 모습이 가슴을 울먹이게 했다”고 회고했다.

이 만남을 계기로 다음 해에 백남준은 34년 만에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신년 벽두에 인공위성 우주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성공시킨 뒤였다. 4년 후인 88년 9월에는 현대화랑에서 고국에서의 첫 개인전을 열게 된다. 서울올림픽을 주제로 한 판화와 비디오 로봇조각 ‘세종대왕’ ‘선덕여왕’ 등을 선보였다. 박 대표의 주선으로 이건희 당시 삼성전자 회장을 만난 백남준은 그동안 사용하던 일본산 소니 TV 대신 삼성전자 TV를 모든 미술관 전시에 쓰기 시작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설치된 ‘다다익선’에 들어간 1003대 TV가 삼성전자 후원의 시작이었다.

백남준은 오래 떠나있던 조국에 자기 작품이 한 점이라도 더 돌아갈 수 있도록 애를 썼다고 한다. 도 부사장은 “‘존 케이지’ ‘샬롯 무어만’ 등은 소장자가 내줄 수 없다고 하는 걸 백남준이 아주 중요한 것이니까 꼭 한국으로 가도록 하자고 해서 며칠 동안 설득해 허락을 얻어냈다”고 밝혔다.

도 부사장은 1990년 미국 뉴욕 유학시절부터 백남준을 만났다. 프랫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학생으로서 그는 백남준의 앞서가는 예술 혼에 매료됐다. “나의 뉴욕 유학시절 중 가장 의미 있고 소중한 추억은 동시대의 미술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그리고 늘 ‘미친 한국인’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하던 천재 예술가 백남준의 삶을 오래 기간 가까이 피부로 느끼며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썼다. 어머니 박명자 대표가 이었던 백남준과 한국의 끈을 아들이 물려받아 견고하게 다진 셈이다. 그는 “1983년에 시작되어 20여 년 넘게 이어진 작가와의 특별한 추억과 인연을 회고하며 주요 작품들로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고 털어놨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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