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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LG필립스LCD 100억불 공장 '유치 성공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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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경기도 투자진흥과 정상준 차장은 지난해 5월 깜짝 놀랄 전화를 받았다.

"LG필립스LCD가 한국에 투자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LG필립스LCD는 경북 구미에서 6개 공장을 가동하며 월 평균 1백60만장의 액정화면(LCD)을 생산하는 세계 1위업체. 네덜란드 필립스와 한국의 LG그룹이 50%씩 투자한 이 기업이 한국에 공장 설립을 추가로 검토한다는 소식은 투자진흥과를 흥분시킬 만한 메가톤급이었다.

정차장은 곧바로 상부에 보고하고 비밀리에 부서별로 한 명씩 6명으로 비밀유치팀을 만들었다. 산업자원부.건설교통부 등 중앙 정부도 관련 규정을 고쳐가면서 적극 지원했다.

9개월 뒤인 지난 2월 4일, LG필립스LCD는 휴전선에서 10㎞ 떨어진 파주에 공장을 설립키로 하고 경기도와 투자 유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각종 규제 때문에 한국을 떠나는 외국인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이 투자 유치는 헌신적으로 뛴 지방자치단체와 이에 발맞춰 과감히 규제를 푼 중앙정부의 '콤비 플레이'가 엮어낸 작품이었다.

◇발로 뛴 지자체=당초 필립스 쪽이 우선적으로 검토한 곳은 중국.대만이었다. 특히 중국은 인건비가 싼 데다 중앙정부의 지원이 파격적이어서 필립스가 선호하는 곳이었다. 상.하수도 및 전력 요금은 물론 세금까지 낮춰주겠다는 당근이 넘쳤다.

더구나 난징(南京)에는 LG필립스의 LCD조립공장이 가동되고 있다. 새로 만드는 생산공장과 난징의 조립공장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이처럼 불리한 조건에서 출발한 경기도는 투자 유치 작전을 극비리에 펼쳤다. "일단 우리가 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중국 쪽을 자극할 게 틀림없어 철저한 보안을 유지했습니다."

도내에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도지사 등 고위층과 6명의 특별팀뿐이었다. 특별팀은 인프라.환경.농지반 등으로 역할을 분담해 필립스에 설명할 보고서를 밤새워 작성했다.

이들이 가장 부각시킨 분야는 전문 인력과 물류 경쟁력. 인력은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한국이 LCD 선두국가인데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 전문 인력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문제는 물류였다. 필립스는 한국에 투자하더라도 한강 이남지역을 원했다. 송도.화성 등이 검토됐다. 하지만 송도는 바닷바람 때문에 제외됐다. 화성에는 50만평 규모의 공단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꺼낸 카드가 파주시 월롱면이었다. 당초 국가공단을 만들려던 곳인데다 여기서 인천국제공항까지는 차로 40분 거리에 불과했다. 서울과 35㎞ 거리였다.

"문제는 파주가 휴전선에서 10㎞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높은 지역에서는 휴전선이 보일 정도니까요."

가뜩이나 북핵 위기가 고조되던 상황에서 필립스가 파주를 달가워 할 리 없었다. 안보 리스크가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특별팀은 월롱면 바로 옆에 있는 경의선 철도를 내세워 남북철도가 연결되면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중국 횡단철도(TCR) 등과 연계, 중국과 러시아 등에 쉽게 수출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유럽으로 가는 물류비도 훨씬 싸진다고 강조했다. 필립스 관계자는 "폴란드공장에서 한국까지 부품을 보내려면 한 달 정도 걸리는데 철도로 러시아.중국을 거쳐 파주까지 오는 데는 2주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설명에 무릎을 탁 치게 됐다"고 말했다.

결국 필립스의 론 위다하디락사 부사장 등이 파주 현장을 방문한 뒤 필립스는 투자 규모만 1백억달러대인 한국행을 결정하게 됐다.

정차장은 "지난해 10월부터는 휴일도 없이 오로지 필립스만 생각하며 이들과 30회가 넘는 회의를 했다"며 "그러나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양해각서 체결로 한꺼번에 풀렸다"고 술회했다.

◇중앙정부는 규제완화로 화답=그렇다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수도권인 경기도 파주에 대규모 공장이 들어설 수 없다는 점이었다.

대규모 공장 설립의 허용 여부는 중앙정부의 몫이었다. 주무부처인 산자부는 신속하게 대응했다. 직간접 고용 효과만 5천명에 이르고 연간 생산 3조원, 수출 2조8천억원 규모의 공장을 규제 때문에 잃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산자부는 지난 1일 산업집적활성화법 시행령을 개정, 외국인 투자기업이 수도권에 공장을 짓는 것을 허용했다. 과감한 규제완화로 외국인의 투자를 확정지은 것이다.

이어 산자부.건교부.경기도.파주시 등 15개 기관이 모여 프로젝트 특별팀을 만들었다. 이 팀은 LG필립스 공장이 준공될 때까지 '맨투맨' 방식의 전담 해결사가 돼 각종 규제 등을 해소해 줄 계획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필립스와의 약속대로 앞으로 1년 안에 공단을 조성하는 일이다.

보통 대규모 공단을 조성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3~4년 정도. 이에 대해 산자부 임채민 국제협력투자심의관은 "전기.용수.도로 등 인프라 확충에 여유가 없다"며 "최대한 규제를 풀어 신속히 공단이 조성되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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