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진박 마케팅’ 현실로 드러난 새누리당 공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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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새누리당의 3·15 공천 결과 현역 의원 9명이 탈락했다. 친이계 좌장인 5선 이재오 의원을 비롯해 진영(3선)·조해진(재선)·이종훈(초선) 의원 등 친이·비박계 의원이 대다수다. 대구에선 친유승민계 김희국(중-남)·류성걸(동갑) 의원이 고배를 마셨다. 이미 공천에서 탈락한 권은희·홍지만 의원과 조해진·이종훈 의원 모두 유 의원과 친한 관계인 만큼 유승민계가 사실상 초토화된 셈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류성걸 의원 지역구엔 ‘진박’ 정종섭 후보가 단수 공천됐고 김희국 의원 지역구에도 ‘진박’ 곽상도 후보가 경선 기회를 잡았다. 또 다른 ‘진박’ 추경호 후보도 이종진 의원이 불출마한 달성에서 단수 공천을 거머쥐었다. 반면 이날 공천에서 배제된 친박계는 김무성 대표에게 폭언을 퍼부어 물의를 일으킨 윤상현 의원이 유일하다. 설로만 떠돌던 ‘진박 마케팅’ 시나리오가 현실로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

정당 공천의 핵심은 능력과 인품을 갖춘 인재를 뽑는 것이다. 현역 의원이 그런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거나 지역구에서 지지를 얻지 못하면 물갈이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새누리당의 3·15 공천 결과는 그런 기준에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특히 대구에서 낙천 당한 두 의원은 그동안 여론조사에서 진박 후보들을 앞섰거나 적어도 뒤지지 않는 수치를 기록해왔다. 경선으로 공천을 결정할 경우 진박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약할 것을 우려해 뚜렷한 이유 없이 현역을 탈락시키고 진박 후보를 전략공천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제 새누리당 공천의 초점은 유승민 의원, 한 사람만 남았다. 친박계는 유 의원의 원내대표 시절 발언이 당의 정체성에 부적합했다는 이유로 공천 배제를 주장해왔다. 하지만 유 의원은 그 때문에 원내대표직에서 쫓겨나는 엄벌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끝난 것이지 의원직 재도전 기회까지 막는 건 민주주의에 앞서 상식에 어긋난다고 할 수밖에 없다. 만약 새누리당이 윤상현 의원의 낙천을 명분 삼아 국민이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유 의원 공천 배제를 강행한다면 여론의 거센 반발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