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ECB의 제로 금리…우리도 창의적 대응 고민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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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유럽중앙은행(ECB)이 사상 처음으로 ‘제로 기준금리’를 도입했다. 그제 ECB는 월례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현행 0.05%의 기준금리를 0.00%로 낮췄다. 기준금리는 은행 간 대출금리의 기준이 된다. 기준금리를 올릴수록 돈줄을 죄게 되고 낮출수록 돈 흐름이 원활해져 경기를 자극한다.

ECB가 기준금리를 제로까지 끌고 내려 온 것은 사실상 중앙은행의 금리조절 기능 무용론을 자인한 거나 다름없어 비판을 부를 수 있다. 중앙은행의 불신과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초래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어서다. 그럼에도 제로 기준금리 카드를 꺼내든 것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하고 싶은 디플레이션 우려 때문이다. 올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0.1%에 불과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ECB는 제로 기준금리뿐만 아니라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돈을 맡길 때 적용되는 예치금 금리도 -0.30%에서 -0.40% 낮추는 돈풀기 총동원령을 내렸다. 또 채권 매입을 통한 양적완화 효과가 직접 가계와 기업에 파급되도록 우량 등급 회사채는 채권 매입 대상에 포함시켰다.

기축·준기축 통화국의 무제한 통화 완화 경쟁은 치킨게임처럼 ‘갈 데까지 가보자’는 양상이 됐다. 미국도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할 가능성이 커졌다. 이런 흐름은 단기적으로는 세계 경제에 호재로 작용해 증시 안정세라는 착시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주요 중앙은행의 의도는 명확하다. 일본처럼 한 번 디플레의 늪에 빠져들면 백약이 무효라는 걸 아는 이상 내수를 자극해 경기를 살리려는 필사적 몸부림이다.

정부와 국회·한국은행은 이번에 ECB가 보내온 경제위기 심각성의 신호를 놓치지 말길 바란다. 정부는 규제완화와 구조개혁을 통해 기업 투자의 족쇄를 풀어주고, 국회는 서비스산업발전법과 노동개혁법 통과를 통해 이를 지원해야 한다. 중앙은행은 교조적인 물가안정 목표에만 매달려 있지 말고 수요 창출을 위해 선진 중앙은행처럼 쓸 수 있는 정책카드를 모두 동원해 주길 촉구한다.